[미혼 신문기자의 추석명절나기] 오승지 광주매일 기자
게시글 작성정보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10-23 14:28
- 조회수 5,566
- 댓글수 0
게시글 본문
◼ 미혼 신문기자의 추석명절나기
‘달라진 명절’ 잔소리보다 여행!
길지 않은 연휴에도 가족들 추억쌓기 ‘눈길’
성묘·음식장만 도우며 부모님 손 덜어드리기 ‘보람’
![]()
<사진설명> 이번 명절에는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야외 나들이로 눈을 돌렸다.
승촌보 옆 자전거 도로길에서 가을 정취 즐기며 한 컷.
![]()
<사진설명> 광주전남혁신도시 내 전망대 모노레일을 찾은 가족들로 붐비는 모습.
민족 고유의 명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역시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명절 연휴기간에는 모처럼 회사 업무에서는 조금 물러나서 가족에게 집중 할 수 있고, 또 나를 돌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늘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이미 출가한 오빠 내외가 집을 오는 때이기에 모처럼 집 대청소도 하고, 부모님을 도와 성묘와 음식장만에 직접 나서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짧았던 연휴에 오빠 내외가 비상근무를 해야하는 처지에 놓이자 우리 가족은 긴급히 명절 연휴 프레임을 과감히 바꿨다. 남도의 맛과 멋을 통해 함께 추억을 만들러 밖으로 나섰다.
‘맛과 멋’ 나들이
오빠 내외는 사실 광주와는 큰 인연이 없다. 오빠의 경우 일찍이 서울에서 생활했고, 울산에서 태어난 올케 언니 역시 광주와 전남은 낯선 도시일 뿐이었다.
그동안 집에서 맛본 남도 음식도 맛있지만, 모처럼이니 야외 나들이를 하면서 점심 식사를 하자는 아빠의 말씀에 서구 치평동의 한 한정식 집을 찾았다.
추석 연휴 첫날인 23일 다음날 영업을 위해 일요일인 이날 운영하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예약에 성공해 오빠 내외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식당에는 앉기 전부터 맛있는 냄새와 상다리 휘는 음식 향연이 펼쳐졌다.
마침 집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만들어준 전어 구이부터 다양한 회와 눈과 입이 즐거운 음식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결국 남은 것을 포장해가야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이렇게 촉촉하고 통통한 보리굴비(부세)는 처음 먹어본다”며 한공기 뚝딱 비운 올케언니를 보며 가족 모두 흐뭇해 했다.
맛있는 밥을 먹었으니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티타임 이었다.
우리는 차는 나주에서 마시자며, 빛가람 혁신도시로 향했다.
가까운 나주지만, 나조차 한번도 가지 않았던 빛가람호수 전망대로 향했다. 걸어서 계단 2층이지만, 굳이(?) 모노레일에 올랐고, 도착한 전망대에서 혁신도시를 한눈에 담았다. 그리고 혁신도시를 눈에 담으며 추억도 한잔 마실 수 있는 전망대 카페에 들러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바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우리 외에도 연휴를 맞아 많게는 4대까지 함께 와서 추억을 쌓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가족처럼 소중한 시간을 뜻깊게 보내려는 가족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어 나주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는 승촌보 뒷길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로 마무리 지었다. 단 하루, 반나절. 우리가족만의 짧은 나들이였지만, 함께였기에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시간이었다.
깨달음의 ‘명절나기’
오빠 내외가 바빠서 일찍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되면서 우리 가족 아빠, 엄마, 나만의 추석이 비로소 시작됐다. 조부모님들께서 다 돌아가신데다 세명만의 명절이라서 부모님이 약간 허전해 하실까봐 모처럼 나도 팔을 두세번 걷어붙였다.
아빠를 따라서 성묘마다 돌며 잡초관리도 해보고, 엄마를 도와 온갖 전부치기의 기술을 습득코자 노력해봤다.
사실 집안의 막둥이로 태어나 명절나기를 한다는 것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번 명절 느낀 바로는 부모님이 하시는 모든 명절 음식, 성묘, 집안 정리가 모두 자식들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조상님들께 예를 다 해야 우리 애들이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
이 한마디가 찡하게 와 닿았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 자식들로 비롯된 것이었다.
그동안 집에 늦게 들어가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더니, 수줍게 미소지으며 고맙다 말씀하시던 두분 미소가 가슴에 새겨졌다.
역대 가장 최소 인원으로 명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은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풍성한 한가위에 이어 다가올 설날도 따뜻하게 쇨 수 있길 바란다.
Ps. 물론 시집 언제 갈거냐로 무언의 압박을 당한건 안 비밀 ^^.
/글·사진=오승지 광주매일 기자
-
이전글
-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