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독서토론열차학교’ 동행취재기 - 박성호 kbc 기자
게시글 작성정보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09-19 14:23
- 조회수 5,710
- 댓글수 0
게시글 본문
◼ ‘러시아 독서토론열차학교’ 동행취재기
34살 기자 아저씨와 120명의 십대들의 시베리아 성장기
영어 한마디 제대로 안 통하는 나라에서 막막함으로 출발
3박4일 열차 속에서 만난 온전한 나의 시간에 감격하기도
<사진설명> 앙가라강 앞에서 정의석 선배, 교육청 식구들과 함께한 모습
러시아,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매서운 추위가 떠오르는 나라.
러시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모두가 떠올리는 그 정도 수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던 나와 러시아의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전남도교육청 독서토론열차학교를 동행취재하게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중국과 러시아, 몽골을 돌아보는 120명의 전남 학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출발 3일 전에 1시간짜리 특집다큐는 4편의 연속보도로 줄어들게 됐다. 허탈감이 컸지만, 마음 한 쪽 구석에서는 홀가분함도 느껴졌다. 덕분에 일에 대한 부담보다는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됐다.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4시간여 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눈이 파랗고,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그래도 대충 영어를 알아듣지 않을까?” 라는 나의 막연한 상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Excuse me.’ 라는 단순한 한 마디 조차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때의 막막함이란. 나의 8일간의 출장 일정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느낌이었다. 기본적인 러시아어 몇 문장 정도는 익혀갔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우리의 일정은 7월31일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시작됐다. 이미 일주일 정도 전에 출국해 중국과 백두산을 돌아본 학생들 무리와 합류했다. 원체 야무진 아이들이었지만 제법 긴 여정에 지칠 법도 한데 모두들 씩씩하고 활발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출발 전 준비 캠프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열흘 만에 다시 만난 방송국 아저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수리스크에서 아이들과 우리는 독립군의 활동무대를 둘러본 후 고려인 마을을 방문했다. 교육 기자재 증정식을 가진 뒤 아이들이 준비한 태권무, K-POP 커버댄스 등 각종 공연을 고려인들에게 보여줬다. 참 열심히 노력한 게 느껴졌지만 왠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함께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이런 어설픔마저 귀여운 나이, 17살이니까. 괜찮다.
<사진설명> 아파서 중도 귀국한 민서 학생과 붉은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수리스크를 돌아본 후 아이들의 여행 중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시베리아횡단 열차에 올랐다. 러시아 극동지방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지방 이르쿠츠크까지 모두 3박 4일, 72시간을 오롯이 열차 안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나 역시도 두렵기도 하면서 기대감도 컸다. 2비행기와 KTX가 익숙한 내게 덜컹거리는 옛 것 냄새 가득한 시베리아열차는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설경은 없더라도 나 역시 광활한 시베리아의 벌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진짜 러시아, 그 거대한 대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기대와 상상은 현실이 됐다. 정말 차창 밖으로 하얀 자작나무 숲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려도 하얀 자작나무 숲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한 시간 전에 봤던 숲이 한 시간 뒤에도 눈앞에서 계속 지나갔다. 지루할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루함마저도 열차가 주는 선물이었다.
창 밖의 풍경처럼 열차 안에서의 삶도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풍경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다시 또 일어나서 한국에서 받아온 밀린 드라마를 보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급박한 상황도 없었다. 무려 4일 동안, 살면서 잊어버렸던 내게 주어진, 넘치는 시간이었다.
남들에게 내 이름 석자 뒤에 ‘기자’라는 이름을 붙여 소개하기 시작한 7년 전부터였을까.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상식이 풍부하거나 머리가 똑똑하거나, 그렇다고 성격이 외향적이지도 못했던만큼 남들만큼 하는 기자가 되기 위해선 귀동냥을 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유일한 무기였던 터라 내게 하루는 너무나 짧았다. 게다가 삶의 동반자가 생기고 사랑스러운 두 아들까지 태어나면서부터는 주말도 내 것이 아니였다. 그 어디에도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낯선 러시아의 비좁은 열차 침대 위는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었다. 나는 어쩌면 입버릇처럼 말하던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너무 멀리 빠르게 달리느라, 너무 많은 것을 지나치고 오진 않았을까.
기차에서 내려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를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러시아 동행취재는 모두 끝이 났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러 러시아를 따라왔다가 34살 뚱땡이 기자 아저씨의 뒤늦은 성장기를 쓰고 돌아왔다.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러시아. 함께 고생했던 정의석 선배와 교육청 식구들, 그리고 120명의 똥꼬발랄한 학생들에게도 긴 시간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사진=박성호 kbc 기자
-
이전글
-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