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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취재 이야기 - ‘진실은 언제쯤…불러도 대답없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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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05-16 15:07
  • 조회수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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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취재 이야기

 

진실은 언제쯤불러도 대답없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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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속절없이 가라앉던 세월호를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들은 붙잡지 못했다.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기나긴 일정이 언제쯤 끝날지,

그 누가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목포 신항에 누워 있는 세월호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또 다시 그 날이 돌아왔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바다가 세월호를 삼키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꿈까지 앗아가 버린 그 날. 취재현장에서의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시 또 그날이 돌아온 것이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지난414일 목포신항을 방문했다. 마지막 취재 이후 세월호를 직접 본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육지에 인양되어 있는 세월호는 그 동안 더 녹슬고 낡은 모습이었다. 배 주변엔 굉음을 내는 중장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길게 누운 선체를 바로세우기 위한 준비작업 중이었다.

4월답지 않은 칼바람이 신항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스산한 기운마저 들었다. 이미 신항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추모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추모객들은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그 날의 기억을 되새겼다.

우산을 들고 신항 북문으로 다가갔다. 출입초소에 신분증을 제시하면 누구든지 선체 가까이 다가가 참관할 수 있었다. 불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한 세월호는 붉게 녹슬고 삭을 대로 삭아 있었다. 참혹한 민낯이었다. 추모객들은 선체를 마주하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유독 가족단위로 온 추모객들이 많았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노란 우비를 걸치고 있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들은 거대한 세월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올려보았다.

대학생과 일반인으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이 10여 분 가량 세월호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가라앉던 세월호의 모습과 정신없이 지나간 그 동안의 이미지들이 불현 듯 떠오르고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설명이 끝나자, 호기심 넘치는 어린 아이들의 질문이 침묵을 갈랐다.

저 배에 탄 사람들은 왜 죽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잖아. 저 배에 탄 학생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다가 저렇게 됐단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 말을 들었는데 왜 죽었어요?”라는 천진한 질문에 아이의 아빠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떨궜다.

군중 속에선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볼 수 있었다. 군 간부의 인솔을 받고 온 병사들이었다. 부식된 선체를 보곤 고개를 떨구며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졌다. 안내하는 봉사자들과 설명을 하는 해설사들은 이내 바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필자도 자리를 떴다.

다음날인 15, 취재를 위해 다시 신항을 찾았다. 참사일 하루를 앞두고 항구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추모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저 멀리서도 철제 펜스에 매달린 샛노란 리본이 선명했다. 먼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강풍은 사정없이 리본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광장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과 인양, 수습, 조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기획전이 열려 추모객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을 한 할머니는 희생자의 영정 사진들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흰 국화꽃을 놓고 가는 추모객도 있고, 과자와 편지를 두고 가는 추모객들도 있었다. 작은 유리잔에 담긴 소주와 피우지 않은 담뱃갑도 보였다. 추모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나도 준비한 메모지를 붙였다.

이런 사고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웃는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가라앉은 분위기의 신항 한 켠에선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한 국회의원의 행태가 문제가 된 것이다. 소란스러운 틈을 타서 다가가 보았다. 멀끔한 얼굴의 정치인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목포 신항만 입장을 막고 있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간 안 찾더니 이제야 얼굴을 보이느냐, 왜 찾은 것이냐는 고성이 오갔다. “특별한 날이기에 방문했다.”는 정치인의 대답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흉흉해졌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속절없이 가라앉던 세월호를 어떤 방법으로도 붙잡지 못했던 우리들.

더욱이 그날의 진실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기나긴 일정이 언제쯤 끝날지, 그 누가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목포 신항에 누워 있는 세월호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길용현 전남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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