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동백이 ‘툭’ 떨어지니 ‘오월’마저 울고 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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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04-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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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동백이 ‘툭’ 떨어지니
‘오월’마저 울고 말더라
곳곳 대량 학살 흔적 참석자들 슬픔에 공감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 공통 아픔 간직
진상규명·피해보상 등 각각의 경험 공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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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지난 1일 전국기자협회 회장과 사무국장은 제주도 관광공사 초청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이들은 3일까지 제주 지역의 학살 현장을 직접 걸으며
당시의 참혹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때가 11살이었습니다.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지요. 갑자기 밤에 경찰로 구성된 토벌대가 오더니 마을 사람들을 공터에 모았어요. 그리고는 총을 쐈어요. 살아남은 사람은 풀숲으로 도망쳤고, 우리 집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망쳤지요. 그리고 3개월여, 어린 동생들은 굶어죽고, 어머니는 막내를 낳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끝내 세상을 떴습니다. 나와 어린 젖먹이만 남았었지요.”
70년. 강산이 7번 변하는 시간. 거슬러 오르면 일제가 떠난 자리에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할 그 시기. 일본 경찰도 제대로 총 한번 쏘지 않았던 제주도가 불바다가 됐다. 죽은 자는 1만4231명.
“해안선에서 5㎞ 이상 지역에 거주하거나 출입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경찰들과 군인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격려를 받고 제주도민을 사살했다.
울면서 끌려가던 마을 사람들은 “내 시신이나 잘 찾아줍서”라며 자식들이 찾아오라고 논 바닥에 검은 고무신을 던졌다. 그렇게 맨발로 한참을 걸어가 우리 경찰의 총에 맞고 서로 뒤엉켜 흙속에 잠들었다. 동백이 지듯 ‘툭’하고 일거에 제주전역에 떨어져 내렸다.
닮아 있는 사월과 오월
지난 1일 제주도 관광공사 초청으로 전국기자협회 회장과 사무국장이 제주도를 찾았다. 4·3 바로 알기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총 15명의 인원들은 이틀에 걸쳐 제주 지역의 학살 현장을 직접 걸으며 설명을 들었고, 늦은 시간까지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삼일 째는 4·3 기념식에 참석해 무고한 수많은 넋들을 위로 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에서는 김효성 협회장이 참여했다.
직접 제주도민들이 토벌대의 인간사냥을 피해 도망쳐 숨었던 동굴 큰넓궤에 까지 들어간 김 회장은 “제주의 사월과 광주의 오월은 철저하게 닮았다”고 말했다. 일행의 문화관광해설사 역할을 했던 김종민 전 제민일보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된 양민학살 사건이다. 무려 7년 7개월 간 이어졌으며 남로당 무장대와 미군정, 국군, 경찰 간의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4월3일 시작된 학살 명령은 간단했다. ‘해안가 5㎞ 이상의 내륙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사살하라’였다. 그때부터 7년 7개월간 학살이 이어졌다. 사라진 제주 마을만 해도 109개에 달한다. 희생자 3만명 가운데 3분의 1은 어린이, 노인, 여성 등의 힘없는 약자들이었고 전체 희생자 중 86%가 군·경 토벌대에 의해 학살됐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는 말은 수십년간 ‘빨갱이’었다. 나아가 이 사건은 독재정권은 물론이고 문민정부 시절까지도, 논하는 것은 금기로 치부됐다.
오월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맞서 일어난 시위가 진압군과 격한 대립을 벌인 끝에 광주에 진입하려는 진압군과 광주시민들의 총격전으로 발전, 결국 진압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수년간 금기시 돼 왔다.
다행히 4·3 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인 국민의 정부때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과 조사가 시작됐다. 국가적 학살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손잡아야 할 두 ‘봄’
그럼에도 2018년까지 사월과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월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10월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부 보고서로 정식 채택되면서 진상이 확연히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58주기 4·3위령제’에 참석해 유족과 도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보상은 아직까지도 멈춰 있다. 찾지 못한 유골이 산더미이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원인조차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대량학살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유해발굴과 피해구제 등 후속조치와 관련한 국비예산이 뚝 끊겼다.
오월은 피해보상과 유공자 처우에 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발포 명령자에 대한 것이나, 왜 쏘았는지 어떻게 시민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보고서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하려해도 할 근거가 아직 마련이 안 돼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월과 오월은 손을 잡아야 한다. 4ㆍ3 사건 취재에만 십수년을 쏟아 부은 김종민 전 제민일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4월은 5월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광주시민처럼 단합된 모습으로 그날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게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5월도 4월에 배워야 한다. 제주 4·3처럼 국가 차원의 진상보고서가 채택되면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이 바로 제주 4·3과 광주 5·18의 연대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노병하 전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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