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다낭연수기 - 격동의 현장서 '뜨거운 심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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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01-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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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다낭성당 앞에서 회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베트남 다낭 연수기
한반도 1·5배 면적인 국토와 1억명에 이르는 인구. 전체 60%가 35세 이하인 젊은 국민. 쌀·커피·계피 등 국제 품질 기준에 오르는 작물과 천연고무·석유 등 세계적인 생산량을 기록하는 자원.
광주전남기자협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베트남으로 3박 5일 일정으로 2017년도 하반기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협회 장필수(광주일보) 회장과 최정민(KBS광주방송총국) 지역언론발전 및 공정보도위원장이 단장과 총무를 각각 맡았다.
남도일보 김경태 부국장, 광주매일신문 김종민부국장, 전남일보 박간재 부장, 무등일보 류성훈 부장, 광남일보 최기남 부장·이현규 차장, 광주MBC 김철원 차장, 광주일보 김지영 차장, 임은정 사원, 전남매일 이나라 기자, 연합뉴스 광주전남본부 정회성 기자가 단원으로 참여했다.
격동의 현장서 '뜨거운 심장'을 만나다
최대 휴양지·항구도시 다낭···'한강' 주변엔 마천루 빼곡
'세계 6대 해변' 미케해변서 힐링의 물장구
우리에게 베트남으로 익숙한 '비엣남(Vietnam)'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 해안선 3천444km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무안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전세기를 타고 4시간가량 날아가 베트남의 한 중간쯤 자리한 다낭에 도착했다.
다낭은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을 지닌 베트남 최대 휴양지이자 항구도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Han River)이 있는데 주변 풍광도 서울과 닮은 구석이 있다.
12월의 다낭은 광주의 5월과 기온이 비슷했지만, 아침마다 빗줄기가 쏟아졌고 습도는 상대적으로높았다.
베이스캠프로 삼은 므엉탄 럭셔리 호텔 주변에는 갓 뼈대를 올린 마천루가 빼곡했다.
오토바이 물결이 흐르는 다낭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은 청년층이 대부분이었다.
행정수도인 북부 하노이가 사회주의 체제를, 경제수도인 남부 호치민(사이공)이 개혁개방정책을 상징한다면 올해 APEC 정상회담이 열린 다낭은 연 6%대 성장세를 보이는 베트남의 역동성을 대표하는 듯했다.
다낭의 대표 명소는 '포브스(Forbes)'지가 세계 6대 해변으로 꼽은 미케(MyKhe) 해변이다.
여름에는 우리나라 동해를, 겨울에는 서해를 느낄 수 있는 해변이 호텔 주변을 관통하며 20km 가까이 펼쳐져 있다.
해가 저문 미케 해변의 바람과 파도와 모래는 세월호 인양, 대통령 탄핵, 장미대선, 수능연기, 100일 가까이 이어온 공정보도 투쟁 등으로 몸과 마음이 축난 우리에게 크나큰 치유가 됐다.
미국을 상대로 벌였던 전쟁 당시 베트남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유럽 전선에 투하했던 총량보다 많은 폭탄이 하루 만에 쏟아져 내렸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뤄진 다낭 오행산에는 이때 새겨진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허리 깊숙이 불상을 모신 동굴의 천장마다 뻥 뚫린 구멍 아래로 햇빛이 스몄다. 포탄의 위력은 단단하고 두꺼운 대리석 암반마저 판자조각처럼 깨부쉈다.
16년이나 이어진 전쟁의 시작점에는 프랑스 식민지배 독립이 남긴 후유증인 남북분단, 그로인한 갈등과 분열이 있다.
전쟁의 서막에서 대승려 틱꽝득(釋廣德)은 민중과 종교인을 탄압한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부에 항의해 자동차 연료를 몸에 붓고 불을 붙였다.
틱꽝득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앞두고 제자를 불러모아 '앞으로 넘어지면 나라의 미래가 없고, 뒤로 넘어지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10여분간 가부좌 자세를 유지하고 뒤로 쓰러졌다. 군중을 해산하고자 현장에 배치된 경찰마저 큰절을 올렸다.
시신은 화장장 소각로에서 6시간 동안 불에 탔다. 뼈마저 가루로 변했지만 그을린 심장은 온전히 남았다.
당국은 황산을 끼얹고, 소각로 불길에 다시 집어넣는 등 심장을 태워 없애려고 했다.
모든 과정을 이겨낸 틱꽝득의 심장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하노이 국립은행 금고로 옮겨졌다.
우리는 베트남 왕조 마지막 수도였던 후에의 티엔무사원에서 틱꽝득의 마지막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소신공양 현장까지 틱꽝득이 손수 운전했던 자동차, 그을린 심장을 두 손에 받쳐든 제자의 사진 앞에서 최정민 KBS광주방송총국 차장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이라고 말했다.
-정회성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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