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언론상 수상소감] 공로상 이창성 중앙일보 전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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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7-09-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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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주신 5·18기념재단과 광주전남기자협회에 감사드린다.
이 상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그 당시 가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나보다 80년 5월 18일 군이 학생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폭행하는 장면을 취재했던 전남·광주기자들 특히, 나경택 기자가 상을 받아야했기에…….
4·19의 기폭제가 되었던 마산 앞바다의 고 김주열 군의 시체 보도와 같이 군의 무자비한 폭행사진은 광주시민항쟁의 시발이 되었던 것이다.
매년 5월이 되면 광주항쟁기간 중 특히 5월 22일 새벽부터 정오까지 밤새 군과 교전 끝에 동료 죽음을 목격하고 분노에 찬 시민군들의 형언할 수 없는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기자 생활 30년 동안 나는 68년 월남전을 취재했고 82년 레바논 전쟁터에가 이스라엘 군에 무차별 얻어맞고 시리아군의 총격을 받은 적도 있지만 광주 항쟁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 21일 낮 첫 발포 현장을 취재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시민군과 군이 충돌할지 모른다고 전부 피하라고 하여 도청옆 여관으로 잠시 철수했을 때 첫 충돌의 발포희생자가 났던 것이다. 총소리가 들려 옥상에 올라가니 군은 질주하는 시위차량에 총격을 가하고 있었고 구경하던 시민이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있었다. 그 순간 4컷의 사진이 유일하게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진이 있을 뿐이다.
27일 군의 광주 진압한다는 소식에 나는 결심했다. 내가 다시 가겠다고…….
아내의 울음 섞인 전화를 뒤로하고 밤늦게 광주로 향했다.
아침 8시경에 광주도청에 도착하니 수십 구의 시체가 쌓여있고 아비규환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셧더를 눌렀다.
취재를 도왔던 지휘부에 있던 시민군들이 군의 진압시 거의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 후 살아남은 자로서 그들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2008년에 28년 만의 약속의 사진첩을 발간하며 조금은 마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사진으로 증명되므로 어떤 어려움을 이기고 기록에 충실해야하지 않을까? 꼭 진실을 기록하자.
이 상패는 어떤 상보다 값있고 후손들에게 떳떳이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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