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페터를 기억하며 - 김찬호 전 5·18재단 사무처장
게시글 작성정보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7-09-21 15:48
- 조회수 6,440
- 댓글수 0
게시글 본문
힌츠페터를 기억하며
2005년 힌츠페터 광주 방문 이끈
김찬호 전 5·18재단 사무처장
택시운전사가 개봉을 한 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 오후, 경기도 수지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조카가 웬일로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왔다. 여름방학이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는가 보다.
녀석은 엄마랑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고 한다. 내 여동생이 녀석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고 살짝 귀뜸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냐고 물으니 대뜸 "전두환은 정말 나쁜 사람이고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5·18을 위해 일했던 것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왜 삼촌은 그 일을 그만 두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전에 일하던 곳을 그만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5·18 당시 군인들 때문에 다치고 또 가족을 잃은 분들의 치유를 하는 곳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녀석 "아 그래"하며 환한 목소리로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5·18을 알게 되었을까? 전화를 끊고 한동안 벅찬 가슴을 진정시켰다. '택시운전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공부시킨 좋은 기회가 된듯했다.
이를 있게 한 영화관계자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겠지만, 역시 '위르겐 힌츠페터'는 우리들에게 또 한 번의 큰 선물을 줬다.
2004년 봄 어느날 독일에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힌츠페터가 심장병으로 위독해 수술에 들어가기 전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유언은 그가 죽으면 그를 망월동 5·18묘지 희생자들 옆에 묻어달라고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5·18관련 시설은 광주시가 관리하고 있었다. 광주시 담당부서와 소식을 접수한 우리들은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지라 적잖이 당황했었고, 관련 규정을 검토해 협의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연히 안부전화를 한 연합뉴스 남현호 기자(현연합뉴스TV 앵커)가 관련 사정을 듣게 됐고, 이를 처음 보도했다.
이 보도는 즉시 광주시민을 비롯해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광주시 홈페이지는 힌츠페터의 망월동 안장을 청원하는 수백개의 게시글로 인해 마비가 되었다.
이에 광주시는 마침내 힌츠페터가 5·18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린 외신 기자 인점을 인정해 그의 유언대로 하겠다고 결과를 알려줬다.
나는 이 소식을 독일 힌츠페터씨 가족에게 알렸다.
다행히 힌츠페터의 수술결과는 좋았고, 의식을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데 사실 가족들은 그의 사후 광주안장을 반대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위험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유사시에 대비해 그들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남긴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대신 광주에 남길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대해 힌츠페터 부인은 우선 반색했다.
2005년 건강한 모습으로 힌츠페터씨는 그의 부인과 함께 5월에 개최된 광주국제평화캠프 특별초청자 자격으로 광주를 방문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나는 두 사람과 이야기는 나눴고, 힌츠페터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사각형으로 예쁘게 포장한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이것을 즉시 자료실 담당자에게 주면서 잘 보관할 것을 당부했다.
나의 당부대로 머리카락과 손톱은 재단에 잘 보관돼 있었다. 재단은 이것으로 힌츠페터가 사망한 2016년 5월에 5·18 구묘지에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식을 개최했다. 추모식 행사가 있던 날, 힌츠페터 부인은 그의 자매와 함께 광주를 찾았다. 부인은 행사기간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부인 옆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줄지어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1980년 5·18 당시 광주에는 힌츠페터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내외신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광주를 취재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일본이지만 그 속에는 NHK도 취재했다. 그 기록은 역사의 진실을 알렸고, 광주시민의 위대한 항쟁을 생생히 전했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과 언론인들이 그들 사후에 조차 광주와 함께하길 원했다.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어떤 이들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함께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힌츠페터가 남긴 유언을 따르려 한다면 우리도 누군가의 힌츠페터가 돼 이 세상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을 1980년 5·18의 광주와 같은 곳에서 그들의 투쟁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고 있는가? 지금의 광주라면 그 정도 역할은 해줘야 힌츠페터의 유언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광주트라우마센터 연구기획팀장>
첨부파일
1개-
이전글
-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