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기사는 어떻게든 쓰는 기백 잃지 말라"-조경완 前광주일보 편집국장(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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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6-02-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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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하> 2012년 3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조경완 전 편집국장
"쓸 기사는 어떻게든 쓰는 기백 잃지 말라"
조경완 前광주일보 편집국장(호남대 교수)
▲ 목포고
▲ 전남대사학과
▲ 1985년 광주일보 공채 4기 입사
▲ 편집부·사회부·정치부 기자
▲ 2009년 편집국장
광주지검 강력부로 검사 홍준표는 촌스럽지만 야심만만했다. 눈썹달린 금테안경 너머 항상 무언가를 도모하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일보 법조담당기자인 나와는 친했
다. 밤늦게 기사를 쓰다가 형사소송법상 궁금한 게 있어 전화를 걸면 달달달 답변해줬다.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강력부 검사로서 내게 이것 저것 묻기도 많이 했다. 술은 약했다.노량진 수산시장 사건 수사로 검찰 수뇌부에 찍혀 광주로 좌천된 그였지만 기자들은 애써 이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홍검은 광주에 근무한 2년 동안 전국적 명성을 떨친 수사를 많이 했다. 후일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된 건설폭력 일제단속도 그중 하나다. 당시 건설 토목 관급공사는 이른바
연고주의가 지배했다. 해남군 지방도 확포장공사는 해남에서 공사를 많이 해온 A건설사가, 흑산도 방파제 보수공사는 흑산도에서만 십년 넘게 공사해온 B토건이, 고흥 농지정리
사업은 사장이 고흥출신인 C개발이 맡는 식이다. 어떻게? 이른바 입찰상무들이 담합을 통해 하나마나한 입찰을 하고 낙찰사는 들러리들에게 '떡값'을 푸는 식이다.
그러나 수백억원이 오가는 입찰에 어떻게 평화로운 담합이 늘상 가능하겠나. 폭력이 수반된다. 어깨들이 위력을 과시하고 담합에 응하지 않는 업체를 겁박하거나 실제로 폭력
을 행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입찰장 주차장엔 쇠파이프로 무장한 행동대원들이 봉고차속에 대기하는 풍경이 흔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번번이 흐지부지
됐다.왜? 다들형님동생하는사이니까.
이걸 홍준표가 깼다. 수개월간 은밀히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 30여명을 한꺼번에 구속시켜버린 거다.언론은 "뿌리깊은 건설폭력 일제소탕" "검찰, 고질적 비리 단호 척결" 등
으로 대서특필하고 난리 났다. 나도 1면과 사회면에 홍검의 활약을 크게 썼다.
그런데 박수만 치지는 않았다.홍검이 증거수집을 위해 당시 전남 건설폭력 양대 세력 중한편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대신 플리바게닝을 한 사실을 기사에 썼다. 실제 그랬으니까.
피의자 검거과정도 검찰답지 못하다고 썼다. 홍검은 피의자들에게 건설업계 문제점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니 필기 도구를 지참하고 광주지검 2층회의실로 모이라고 한 후 밖
에서 철거덩철문을 잠갔다. 그게 검거였다. 이 장면은 모래시계 드라마에 그대로 재연됐다.홍검은 수사기법상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치사했다.
이 두 가지를 지적한 해설기사에 홍검은 흥분했다. 노태우 정권 입맛에 맞게 멋지게 한건 했는데 내가 흠집을 낸 걸로 반응했다. 그가 지검장에게 열변을 토해 나에 대해 기피신청
을 한건 며칠 뒤에 알았다. 당시 광주일보 김종태 사장께서 나를 불렀다. 재미있는 꼴을 본다는 듯 웃으시며 "기사는잘썼다. 그러나 검사장이 강하게 요구하니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너 교육청으로 좀 옮겨라"고 말씀했다.당시 교육청은 고참 출입처였다. 개인적으로는 수치스러웠지만 문책인사가 아니라는데 애써 위안을 구할 뿐이었다.
검찰이 언론사 사주에게 출입기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결국 출입기자가 교체된 이 일은 내게 두고두고 쓴 기억이다. 나는 홍검에게 화풀이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쾌감을 줄 것같았다. 김종태 사장님을 원망하기도 싫었다. 신문사에서 명령은 복종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나의 현역생활 중 1991년의 일이다.
뒤져보면 몇 개쯤 무용담도 있을 만 한데 수치스런 기억을 여기에 털어놓는 이유가 있다.후배님들도 기피 신청을 당할지언정 취재대상에 영합하지는 말아주기를, 쓸 기사는 어떻
게든 쓰는 기백을 잃지 말아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장필수 회장 집행부 출범을 축하한다. 나 역시 기협의 회원으로 지냈던지난날을 회상하자니 청춘을 바친 세월들이 아스라 하다. 그러나 그 세월들은 박제되어 있지 않고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1985년에 입사해 2013년 퇴직한나는아날로그 세대의 마지막 기자이자 디지털시대의 첫 기자였다.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 기자이자 개인주의 시대의 첫 기자였다. 기사만 잘 쓰
면 영웅대접 받던 시대의 마지막 기자이자 회사운영에도 신경써야 하는 시대의 첫 기자였다. 고달팠지만 재미있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후딱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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