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의 문화에세이 - 한강의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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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6-07-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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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의 문화에세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오히려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아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른 채 지나치는 것들. 전라도에서 태어나 줄곧 전라도에서 살아온 나에게 5·18도 그런 존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주의 외곽에서 5·18을 엿들었고, 어른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비밀스러운 냄새를 맡고 어렴풋한 호기심을 가졌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대학 시절. 5·18은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 잡았고, 광주는 민주주의·인권의 도시가 되어 해마다 5월이면 많은 참배객들이 모여들었다. 거기까지였다. 깃발 아래 사람들이 모이던 시대가 갑자기 끝나버렸다.
민주주의보다 경제적 성장이 중요해진 사회, 모두를 위한 가치보다 개인의 성공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 5·18은 흘러간 노래가 되어버렸다. 나 또한 5·18을 외면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들이 동어반복처럼 여겨졌고, 오래된 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5·18은 민중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개인들이 들려주는 양심의 속삭임이기도 했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권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새삼스럽게 반추하게 됐다. 가해자와 피해자구도의 잔인한 역사가 아니라, 참여자와 관찰자 관점에서 바라다본 따스하고 가슴 아픈 5·18의 의미를 이 책은 일깨운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기 열여섯살 소년 동호가 있다. 평범한 중3 학생이었던 소년은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다가 진압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에게 5·18은 무엇이었을까.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당시 여고 3학년으로 동호와 함께 주검을 수습하던 은숙. 대학을 그만두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검열에 걸려 출간하지 못했던 '광주' 소재 희곡의 공연을 먼 훗날 보게 되면서 동호의 죽음을 떠올린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중심에 있던 사람의 주변인, 주변인의 주변인 모두 아픈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대로 된 평가를 이끌어내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말 속에 이 책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무엇만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우리와 우리 속의 나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떼는 것.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5·18을 겪게 했다. 폭력이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는 선택이 쉽지만 신사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는 거부하기 어려워진다. 그 때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소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동신대학교 홍보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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