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세미나] 흉탄에 스러진 제주 모녀의 자장가, 귓가에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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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4-05-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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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탄에 스러진 제주 모녀의 자장가, 귓가에 울리다
제주 4·3 세미나
북촌리·함덕해변…곳곳에 상흔
“4·3도 아픈 역사로만 남지 않길”

최근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문학동네)를 읽고 ‘4·3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곧장 세미나에 참석했다. 늘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던 이전 여행과 달리, 알 수 없는 의무감과 부채감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수십 년간 도민들에게 4·3은 입에 올릴 수도 없고 올려서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첫날 강의를 맡은 허호준 한겨레 제주본부 기자는 “최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4·3은 보고서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약 2시간여 동안 북촌리 일대 4·3 유적지를 둘러봤다. 마치 뽑힌 무처럼 널브러진 채 발견된 희생자들을 추모하듯 이리저리 어지럽게 놓인 비석과 이름도 없이 잠든 애기 무덤 옆을 지키고 있던 장난감들이 기억에 남는다.
북촌리뿐 아니라 제주 곳곳이 학살 현장이었다. 함덕해변 백사장에 발을 디뎠을 때는 ‘작별하지 않는다’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것 아닙니까?…총살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모래밭에서 죽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4·3평화공원 한편에는 ‘비설’(飛雪)이 자리 잡고 있다. 젖먹이 딸을 등에 업고 군인들을 피하던 중 총에 맞아 희생된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한 조각이다. 모녀상을 둘러싸고 있는 나선형 돌담에는 제주지역 자장가 ‘웡이자랑’이 새겨져 있다. 눈발이 흩날리던 그날, 숨이 끊어져 가면서도 자장가를 되뇌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참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당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엄숙한 주변 분위기에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김종민 제주 4·3평화재단 이사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여러분 혹시 ‘웃으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에 무표정을 짓고 계신다면 부디 편히, 활짝 웃어 주시길 바랍니다. 4·3은 아픈 역사지만 이곳을 찾아 주신 여러분들까지 억지로 무겁고 엄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찾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요.”
4·3은 현재진행형이다. 희생, 사건, 항쟁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성격이 정명(正名)되지 않았다. 어떤 이름을 감히 쉽게 붙일 수 있겠냐마는, 김 이사장이 한 말처럼 그저 ‘아프기만 한’ 역사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제대로 된 이름을 갖고 반듯하게 세워지길 바란다.
이유빈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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