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공원을 가다] 주성학 광주매일신문 기자 > 기획

본문 바로가기

기획

[일해공원을 가다] 주성학 광주매일신문 기자

게시글 작성정보

profile_image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07-30 14:48
  • 조회수 94
  • 댓글수 0

게시글 본문

역사를 지운 기념’, 침묵을 넘어 행동으로 드러내야

 

일해공원서 마주한 5·18 왜곡

은폐된 공간 앞 질문 무게 느껴

 

045ad14d3b63771aa527dbdbebea5366_1753854508_8121.jpg
045ad14d3b63771aa527dbdbebea5366_1753854508_9962.jpg 

이름을 바꾼다고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죠. 하지만 바꾸지 않겠다는 건 왜곡을 계속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경남 합천 일해(日海)공원을 찾은 한 참가자의 말은 그날 현장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두환의 아호에서 따온 이 공원은 그 자체로 역사를 왜곡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단지 이름의 문제가 아닌 기억을 덮고, 책임을 흐리고, 진실을 지우는 기념이라는 행위가 지금도 공공의 이름 아래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6215·18기념재단과 광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 생명의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한 ‘5·18 역사 왜곡 현장 탐방에 광주시민 50여 명이 참여했다.

·고등학생부터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시민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연대를 목표로 한자리에 모였다.

첫 일정은 일해공원 입구에서의 퍼포먼스였다. 참가자들은 일해공원 폐지해서 역사 왜곡 바로잡자는 구호를 외치며, 전두환 이름이 새겨진 대형 비석에 일해공원 폐지법안 지금 당장 발의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덮었다.

비석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공원 한편에 ‘3·1독립운동기념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역사를 기리는 공간과 왜곡된 기념물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모습은 분노보다 깊은 허탈감으로 다가왔다.

해당 공원은 2004년 조성된 새천년 생명의 숲으로 조성된 뒤, 2007년 당시 합천군수의 결정으로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후 합천군민운동본부는 공원 이름과 기념물 철거, 기념사업 금지법 제정을 촉구해왔지만 10년이 넘도록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날 시민들이 마주한 비석은 그런 정체된 시간을 상징하듯 무심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음 일정은 합천군청 앞 전두환 대통령 기념식수표지석 방문이었다. 19809월 전두환이 군청을 방문해 나무를 심었다는 문구가 새겨진 이 표지석은, 지난해 한 차례 철거됐다가 최근 합천군에 의해 복구됐다.

이를 바라보며 참가자들은 역사 왜곡이 단번에 사라지지 않고, 잠시 숨을 죽였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에 깊은 씁쓸함을 느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문 사본을 표지석 위에 내려놓고 그 위를 발로 밟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전두환의 범죄 사실을 환기했다. 분노와 울분, 그리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다짐이 그 행위에 담겨 있었다.

최기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은 일해공원, 기념식수 표지석, 생가 존치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며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인 문제라며 이 사안은 특정 지역의 갈등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마주한 기억과 정의의 문제다. 국민청원이 성사된 만큼 이제는 국회가 법률 개정으로 응답할 때라고 강조했다.

탐방의 마지막 일정은 전두환 생가였다. 입구 안내문에는 전두환 대통령은 단임 약속을 지켜 1988년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계엄령 확대, 시민 학살, 민주주의 파괴의 흔적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말끔하게 정돈된 안내문과 조용한 마을, 그리고 지금도 국비로 유지·관리되고 있는 생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고동의 생명의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간사는 역사 왜곡의 문제는 단지 합천이나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라며 전국적으로 시민들의 뜻이 모여야 국회가 법 제정으로 응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퍼포먼스 중 비석에 덮은 플래카드 문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상에, 전두환이 자랑스럽다니’. 그 문장은 특정 정치인이나 지역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모두를 향한 일침처럼 느껴졌다.

역사 왜곡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기념물과 공간, 생가의 안내문과 그에 투입되는 세금 등 지금도 구체적인 행위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진실은 침묵 속에서 자라지 않으며,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래서 더욱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기록하고 말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날 합천에서 마주한 풍경은 기자로서 다시 다짐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주성학 광주매일신문 기자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관련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