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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방문기] 71년째 정명되지 못한 4·3… 진상규명 언론역할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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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9-04-17 14:47
  • 조회수 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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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째 정명되지 못한 4·3진상규명 언론역할 절실


제주기협, 전국 언론인 80여명 초청

생존자와 만남·세미나 강연 통해 참극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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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제주도기자협회의 ‘4·3평화기행’에 참가한 한국기자협회 소속 언론인들이

제주 동광 무등이왓 마을을 찾아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로부터 해설을 듣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총탄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다. 2살배기 남동생은 굶어 죽었다. 토벌대가 지나간 뒤 마을은 초토화됐다. 생존자들은 폭도새끼, 석방쟁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4·3의 고통을 속으로만 앓아야 했다.”

330일 제주 동광 무등이왓 마을에서 만난 홍춘호(82)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이곳을 찾은 전국의 기자 80여명에게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홍 할머니는 4·3사건 때 통째로 불에 타 120여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무등이왓 마을의 생존자다. 당시 11살 소녀였던 그는 4·3을 겪으며 남동생 3명을 잃었다.

홍 할머니와의 만남은 지난달 29~30일 제주도기자협회가 진행한 ‘4·3평화기행을 통해 이뤄졌다. 이번 기행은 올해 4·3 71주년을 맞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기협이 주관,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한 뜻 깊은 행사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전국 언론인 80여명이 제주를 찾아 4·3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이 중에는 광주전남기자협회 회원 11명도 포함됐다.

4·3사건은 19473·1절 군중을 향한 경찰의 발포사건을 시작으로 1954년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7개월 동안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당시 1245명이 숨지고, 3578명이 실종됐다.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 수치일 뿐 실제 인명피해는 25000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4·3에 참여했다가 일본으로 밀항한 김시종 시인은 당시 희생자들에 대해 죽음을 강요당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유례가 없을 만큼 참혹한 학살극은 오랜 세월 이어진 제주 공동체를 철저히 파괴했다. 역대 군사정권은 4·3공산폭동이자 반란으로 명명, 우리 역사에 금기로 만들었다.

강재병 제주도기자협회장은 과거 4·3은 한반도의 변방 조그만 섬에서 일어난 사건 정도로 축소됐다. 5·18민주화운동과 마찬가지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인지도는 훨씬 떨어졌다면서 “4·3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제주기협 차원에서 전국의 기자들을 초청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틀간 이어진 4·3평화기행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첫날 광주공항에 집결한 광주전남기협 회원들은 간단한 인사만 나눈 채 곧바로 제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공항에는 먼저 온 타지역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들과 합류해 버스를 타고 40분 가량 떨어진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내 건립된 기념관에는 4·3의 전 과정이 집약돼 있었다. 전쟁과 해방, 미군정 아래 놓이며 조국이 분단될 위기에 촉각을 세웠던 민중들, 4·3의 도화선이 된 19473·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을 비롯한 전 과정이 기록과 사진, 영상물로 펼쳐졌다.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숙소에 당도해 짐을 풀어놓고 나니 바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4·3 관련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한겨레신문 허호준 기자가 언론에 비춰진 제주4·3’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19481019일 제주도 사태 진압을 위해 파견될 예정이었던 여수 제14연대가 반기를 들고 일으킨 여순사건, 그 여파로 제주도에 선포된 계엄령, 해안선으로부터 5이상 들어간 내륙지역을 무주지대로 설정하고 인명과 생존수단까지 섬멸했던 일들이 낱낱이 설명됐다.

허 기자는 특히 “4·371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라며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제주 4·319876월 항쟁 이후 꾸준히 진상규명운동이 이어져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받는 등 오늘날에 이르렀다하지만 희생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전혀 밝혀진 게 없다. 아직도 찾지 못한 유해의 발굴과 미국의 책임 소재 등 과제가 숱하게 남아있다며 언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김정대 전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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