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 초청 뒷이야기] 무모하고 용감하게 풀어낸 '광주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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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6-06-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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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 초청 뒷이야기]
무모하고 용감하게 풀어낸 '광주의 숙제'
힌츠페터 타계에 '선배기자' 그리움 커져
고령· '일베'스런 기자 제외 '고난의 행군'
시민들과 대화에 "정말 행복하다" 눈시울
열정적인 질문 세례엔 "각본이냐" 묻기도
지난 5월16일 9시31분, 예정보다 딱 1분 늦었다. 1980년 5월의 아픔을 세계에 알린 외신기자들은 흔히 볼 수 있는 20인승 '유치원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생각보다 젊었다. 버스에서 내린 브래들리 마틴·노만 소프·팀 셔록·도날드 커크, 36년만의 광주·전남지역 후배 기자들의 공식 초청에 응답해 준 선배 기자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들은 분명 오월의 아름다운 남도의 하늘 대신, 옛 전남도청 별관 건물을 먼저 바라본 듯 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촉촉했다.
서류에 없는 일은 무모한 짓이다. 시작부터 그랬다.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안타까운 죽음에 모두가 가슴 아파했던 게 시작이었다. 광주·전남기자협회와 광주시는 오월의 아픔을 함께했던 외신기자들이 속절 없는 세월 탓에 사망하거나 늙어가는 걸 안타까워했다.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한 두 잔 폭탄주에 오른 취기는 아니었다. 술기운 탓으로 돌리기엔 그 간절함은 남달랐다. 다음날, 해장을 하고 나서도 여운은 오래 갔고,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이 잡혔다.
무모한 만큼, 용감했다. 광주시와 기자협회가 마련한 예산은 늦겨울 창가에 드리운 햇볕만큼이나서운했다. 정해진 돈으로 뭘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욕망은 컸다. 36년 만에 외신기자와 해직기자를 광주로 부르는 일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특히 외신기자들은 생각보다 나이가 들어 한
국행이 쉽지 않았다.
애초 초청하기로 한 일부 외신기자의 경우,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었다. 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한 외신기자를 제외하다 보니, 덩달아 오지 않겠다는 외신기자도 생겼다.
기자협회가 초청한 외신기자가 '일베'스러우면 그것 또한 기자협회의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용감한 건 무모하다. 적어도 광주의 후배 기자들이 초청한 선배 기자는 그 나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초청 외신 기자의 명단이 자꾸 변경되면서 행사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무모했기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정은 촉박했지만 '내용'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더욱 무모해졌고, 행사의 의미와 규모는 커져만 갔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면서, '외신기자를 광주로 부르자'에서 '불러서 3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사를 쓰게 하자'로 이어졌고, '그 기사를 묶어 가상의 신문을 만들자'로 커져 갔다.
'입'만 살아 있는 기자의 허영심은 끝이 없었다. 시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이 또한 끝이 아니었다.
머리 감지 않고 운동복 입고 나가는 날 꼭 첫사랑을 만나듯, 우려는 현실이 된다. 외신기자의 옛 전남도청 방문부터 심상찮았다. 와야 할 통역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외신기자 4명을 초청해 지역 신문방송학과 학생들과 멘토링을 진행하는 게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했는데 단 한명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취재 중인 기자들의 불편도 컸다. 더구나 이날 오전 11시에 예정된 기자회견이 큰일이었다. 모처럼 마련된 외신기자들의 기자회견에 후배 기자들의 관심이 컸는데 약속된 통역이 오지 않아 준비하는 사람들의 애만 탔다.
그래도 힘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평소 기자협회와 교류하던 영어를 잘하는 '멋진 친구'가 떠올랐고, 30분만에 그 친구를 기자회견장에 앉히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어느 기자회견보다 이날 기자회견장은 뜨거웠다. 기자들이 오지 않고, 질문도 없는 형식에 그치지 않냐는 우려는 전혀 맞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질문이 터져나왔다.
상황은 시민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준비위원회에서 시민과의 대화에 사람이 오지 않을 것에 대비해 사람을 불러야한다는 말들이 오갔고, 실제 몇몇 사람들을 부르기도 했다.
또 '질문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몇몇 초청된(?) 사람에게 교과서적 질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막상 시민과의 대화를 시작하다 보니, 우리가 바보였다. 준비된 질문이 나오기 전에 자율적으로 참석한 시민과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행사장에 서 있기 부끄러울 정도로 시민과의 대화는 감동이었다.
"죽을 위협을 겪은 순간이 있었는지, 두렵지 않았는지"(정지윤·광주각화중 2)
"한국이 저널리즘이라는 도구를 잘 이용하고 있느냐"(송민섭·호남대 4학년)
외신기자들도 행복해했다. 브래들리 마틴(전 미국 볼티모어 선 도쿄지국장)은 이날 시민과의 대화를 마치고 "정말 행복하다"고 눈시울을 붉혔고 "근데 질문은 짜여진 각본이 아니었냐"는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NO'라는 답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광주·전남지역 기자에게 5월은 숙명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는 2016년 5월, 그 숙명적인 숙제 하나를 다소 무모하게, 비교적 용감하게, 허벌나게 무식하게 잘 푼 듯하다.
-오광록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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