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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성현 기자의 육아일기] 아이는 세상 초보, 아빠는 육아 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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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9-03-14 15:32
  • 조회수 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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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성현 기자의 육아일기

 

아이는 세상 초보, 아빠는 육아 초보

 

너 태어나고 저녁있는 삶은 사라졌구나… 그래도 이쁜 내 아이, 아빠가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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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는 단언컨대 안 돼.

아이가 돌 즈음 걷기 시작하면서 집안 곳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통에 부정적인 말부터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자기 몸집보다 두 배나 큰 이유식 의자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서랍장 안전 잠금장치를 해놓아도 금세 부숴버린다.

게다가 이 물건 저 물건들을 휙휙 내던지고 있으니 안 돼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다 받아주는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었으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속수무책이 돼버렸다.

안 돼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라 아이에게 정말 쓰지 않고 싶은데 오늘도 안 돼를 몇 번이나 말해버렸는지.

아이는 누워있을 때가 제일 편해.”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 비몽사몽이던 나에게 육아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를 놀리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고집불통에 힘도 남다른 아들을 보면서 그 말이 백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지난 1년을 편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육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조카들을 잠깐 돌봤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육아 지침서를 꼼꼼히 읽으며 자신만만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분명히 책에서 아이가 울면 이유는 3~4가지뿐이라고 배웠다.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아프거나 또는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라고 배웠는데 이 네 가지를 해결해도 계속 울어대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지어 아이의 울음소리를 분석해준다는 어플을 내려 받아 보았다. 울음소리를 녹음해 설레는 마음으로 어플 분석을 기다렸으나 어플에서는 종일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 분석만 내놓을 뿐이었다.

재우는 건 또 얼마나 힘든지, 아이를 안아서 겨우 재웠는데 내려놓자마자 등 센서 작동! 다시 칭얼칭얼 시동을 걸어대니 계속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를 안고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아이가 드디어 통잠을 자주었을 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힘듦도 아들의 웃음 한방에 사라지게 마련이다. 요즘은 어찌나 키득키득하며 잘 웃는지 전라도 사투리로 다들 해보라고 한다. 너무 웃어서 바보 같다는 말인가?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안 남길 수 없어 하루에도 몇십 장을 찍다 보니 어느덧 휴대전화 사진첩은 아내나 내 사진이 아닌 아들의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뿐인가. 출근 후 아내가 보낸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뉴스 제작을 하다 보면 보통 밤 8시를 넘어 퇴근하는 게 부지기수. 집에 들어가 보면 아이는 벌써 자고 있어서 아쉽고, 아내는 너무 지쳐 보여서 안타깝다. 저녁 있는 삶은 언제쯤 올까.

결혼하기 전에 내가 되고자 하는 아빠의 모습이 있다. 나의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사업하셔서 업무를 마치고도 거래처 사람들을 접대하는 자리가 많아 늦게 들어오셨다. 주말에도 일하시는 날이 더 많았을 만큼 늘 바쁘셨다. 이렇다 보니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추억을 만든 기억이 거의 없다. 그 당시 일하시느라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정적인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으로서는 주말이라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아이와 같이 나도 좌충우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사고를 쳤을 때 투덜대는 말부터 나오는 걸 보니 아직은 초보 아빠임을 여실히 느낀다. 아이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훈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한 뼘 자랐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이유식 먹이는 일도, 놀아주는 일도, 둥가둥가 재우는 일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영락없는 왕초보 아빠에서 지금은 초보 아빠정도로 레벨업했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아이와 함께 그냥 웃고 울다 보면 점점 어엿한 아빠가 되어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전쟁 같았던 1년 후에 찾아온 여유다.


/광주KBS 이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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