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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조일근 전 남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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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5-01-06 16:48
  • 조회수 6,245
  • 댓글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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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상)>이집트 취재여행. 사하라 사막 입구에서

남생 처음 낙타 여행을 하기 위해 준비중.
<사진 설명(하)> 동아일보 장철호(작고,뒷쪽), 경향신문 정건조 선배(앞),

광주일보 장준호 기자 등. 전남도청 출입 기자들의 나들이 버스.



되돌아본 나의 기자생활…조일근 전 남도일보 편집국장

 

조일근 전 편집국장은

전남매일신문 기자
중앙일보·무등일보 차장
광주매일신문·광남일보 부장·논설위원
광주타임스(현 남도일보) 편집국장
광주광역시체육회 상임부회장

(사)영광문학기념사업회 회장(현)

 

 

치열하고 거칠었던 세월, 신문의 새로운 길 모색

 신문 기자가 꿈이었다. 이루었다. 치열하고 거친 세월이었다. 유신 말기인 76년에 시작, 박 정권 몰락, 5·18, 강제 퇴직, 8년만의 복귀라는 이력서가 대변한다.


 부끄러운 이력서를 마저 공개한다. 전남매일신문·중앙일보·무등일보·광주매일신문·광남일보를 거쳐 광주타임스(현 남도일보)까지다. 


 무려 6개사를 전전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언론 관련 세미나에서 질문을 받았다. 직급을 올리기 위해서냐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보겠다는 욕심 때문이라고.


 변명이 아니다. 다시 기자를 하겠다고 처자식 호강 시켜줄 수 있는 일을 접었다. 역경에 처한 선배를 돕겠다는 무등일보를 택했다. 후배가 부장인데 차장을 고집했다. 수습기자 교육에 온 정열을 바쳤다.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 그만큼 강했다.

 

광주매일·광주타임즈 창간

 

 회사가 몹시 흔들렸다. 후배들의 장래도 걱정됐다. 금광기업 고제철 회장의 장남 고경주 군과 ‘새로운 신문’ 창간에 합의했다. 김원욱 선배와 이영진·최웅일 등 4명이 6개월여 매일 밤새며 상의했다. 고 회장의 결심을 끌어냈다. 회사 신축 부지까지 결정, 창간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중 위기를 맞았다. 고 회장께서 광주일보 김종태, 금호그룹 박정구 회장으로부터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았다.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할 테니 신문 창간을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고 회장께서 약간 흔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고 회장은 상의 회장에 올랐다. 물론 신문도 예정대로 창간됐다. 


 광주매일에서 고집스럽게 ‘신문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7년. 지쳤다. 광남일보로 피난(?) 갔다. 광남일보 창업주는 가든 백화점 이화성 회장이다. 이 회장은 송원학원 인수를 싸고 고 회장과 감정이 좋지 않았다. 고 회장이 신문을 창간하자 경쟁심에서 창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장 신용호, 주필 윤재걸, 편집국장 정태열 등을 영입했다. 기존 신문사에 비해 손색없는 진용이다. 내 집에서 살다 셋방살이 하는 기분이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IMF로 정리해고 됐다. 이틀만인가? 신문 창간을 추진하던 대지건설 정윤삼 회장을 만났다. 김성의(현 남도일보 편집국장)이 다리를 놓았다. 평소 생각하던 새로운 형태의 신문을 제안했다. 뉴스와 생활광고(줄광고)를 무료로 배포하는 타블로이드 판형의 종합일간지다. ‘광주타임스’라는 제호까지를 정 회장은 즉석에서 수락했다.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 창간 준비에 나섰다. 편집국 규모가 100명 안팎이던 기존 신문과 달리 30명으로 꾸렸다. 교열부와 전산실을 없앴다. 광주타임스의 창간 소문이 꽤 났다. 서울 유수의 신문사 기획실에서 문의가 쇄도했다. 종이 신문의 위기를 예감, 활로를 모색하느라 관심을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시사저널은 나를 인터뷰해 3개면에 걸쳐 ‘새 신문’을 소개했다. 창간과 함께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다. 


 생활광고 시장 점유는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내심 손익 분기점을 3년으로 잡았다. 적자가 해를 넘기자 정 회장과 박 성호 사장이 새로운 시도를 포기했다. 다른 신문과 다름없는 신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문다운 신문’ ‘새로운 신문’에 대한 나의 꿈도 깨졌다. 열정도 식었다. 더 이상 신문에 몸담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변신을 시도했다. 정치에도 뽀짝거렸다. 3년간 체육회 일도 했다. 사업 유혹에 빠져 쫄딱 망하기도 했다.

 

신문난립 책임 통감…후배들께 미안


 광주타임스 창간 이후 광주의 신문 시장은 극도로 악화됐다. 광주·전남·무등·광주매일·광남 등 기자협회 가입사만도 5개사다. 3개사 정도면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들었다. 이들 5개사 외에 전남매일까지 있으니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생활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택했다고는 하나 광주타임스도 신문 시장 상황을 악화 시키는 요인이 됐다. 90년대 이후 광주에는 20개 안팎의 종합일간지가 부침을 거듭하며 발행되고 있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광주에 이처럼 많은 신문이 태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든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광주매일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광남일보가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광주타임스도 마찬가지다. 그랬다면 오늘날 광주에 이처럼 많은 신문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모든 신문사의 경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후배 기자들이 충분한 급료를 받지 못해 어렵게 살아가는 것으로 안다. 나 때문인 것 같아 대단히 미안하다. 광주 언론의 중추요 역사인 광주일보마저 경영난을 겪고 있다니 죄책감이 든다.

 

志士精神으로 무장해야

 

 기자협회의 협회보 발행에 작은 위안을 받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발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서다. 광주·전남의 후배 기자들에게 바란다. 과거 우리 지역의 신문은 부산·대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기자의 자질도 그만큼 높았다. 자부심을 갖고 임하길 간절히 당부한다. 월급이 적다며 어깨를 움츠리려거든 잡아 치워라. 기자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는 틀렸다. 하루라도 빨리 돈벌이가 되는 직업을 찾아라. 


 기자를 계속하려거든 지사정신(志士精神)으로 무장하라. 월급쟁이 직업인이라는 인식은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 작은 대문으로 구부리고 들어가는 살림이었어도 벼슬아치들에게 결코 숙이지 않는 선배들을 보았다. 존경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고 욕하지 말라. 나는 지금도 스스로를 기자로 여기며 산다. 대통령이나 재벌과도 마주앉아 인터뷰 할 수 있다. 거지나 도둑과도 함께 잠잘 수 있다. 어린이처럼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기자. 멋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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