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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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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4-10-17 16:43
  • 조회수 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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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남경찰청 방문한 강민창 치안본부장. 강전 본부장은 재직당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은폐와 축소로 일관했다가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되돌아 본 나의 기자생활

 

위 성 운
전 남도일보 편집국장·주필

위성운 전 주필은

 - 옛 전남일보 입사
 - 광주일보·중앙일보 기자
 - 무등일보·광남일보 부장·부국장
 - 남도일보 편집국장·주필

 

 

 

글쓰는 직업인 잊어서는 안 돼

 

 


교육대학을 나와 언론계에 뛰어든 무모한 결단이 과거사의 맨 앞자리에 다투어섰다. 고생스런 말년을 맞아도 싸고 어머니 눈물을 보게 했던 진로 수정으로 눈만 뜨면 취재하고 기사 쓰고 마시는 생활이 막이 올랐다. 옛 전남일보 사주의 주석 슬로건인 ‘마시는 저녁’, ‘일하는 아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얼치기 기자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석간이었던 탓에 낮부터 시작되는 음주벽은 독서와 가계를 뒷전으로 한 채 지속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석에서 이따금씩 올바른 기자상 정립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고민은 죄의식이 되어 어쩌다 술을 멀리할 때면 문장 강화 서적을 뒤적이도록 강요했다. 틈새 공략 끝에 단락 구성법을 깨득하고 사설(논술문)은 사실과 의견이 기본 요소라는 이론을 겨우 알게 되었다. 글 못쓰는게 기자에겐 최대의 부끄러움이다. 그런 어두운 과거사는 거짓으로 고백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교훈을 얻기 위해 배운다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독사’가 아호가 된 사건기자 10년


외인부대들이 왜 그리도 술에 탐닉하는 생활에 빠져드느냐고 물어 올 때면 사건기자가 유일한 응대 무기였다. 길지 않은 언론종사 기간에 10년쯤 사건 현장을 누볐으므로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었다.그 기간에 서부, 광주경찰서를 비롯 전남지방경찰청, 검찰, 법원을 두루 커버했다. 전남일보 선무정 선배가 ‘독사’라는 별명을 지어줄 때도 사건기자 시절이었다. 사건기자는 주변의 민원을 해결해야하는 2중고가 유난히 심하다. 현역을 떠난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죄의식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기사나 민원들이 아직 살아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광주일보 시절 어린이 날이었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여자 초등학생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학생은 집안에 있는 박카스 병에든 내용물을 마신 후 통증이 일어 병원에 실려왔다. 그가 마신 병에든 액체는 박카스 액이 아닌 농약이었다. 아버지가 텃밭에 쓰려고 담아두었던걸 박카스로 오인하여 마신 것이다. 병원에서는 농약을 마신 어린이 잎에서 거품이 나오니까 간질환자로 단정하고 엉뚱한 치료를 하다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항상 값진 제보를 해주던 김 모 간호사가 당직한 날이었다. 경찰 수사를 받은 후 상냥함이 사라진 그 간호사의 굳은 모습이 아물거린다.


이런 기억도 되살아난다. 전매청 사무관의 횡령 사실을 보도해 그 자리를 물러나게 한 사건이다. 그는 재직 중이었던 신문사 실세 간부의 인척이었다. 그 간부는 이른 아침부터 편집국에 들려 출고된 기사를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은 사주의 최측근인 이간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게 된 원인 기사였다. 기사를 살려준 상사분에 대한 경외심과 피해 실세와 당사자분에 대한 죄의식이 지금도 따라다닌다.


희대의 소매치기 대부 장이천이 일부 인사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사실을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당시 광주지검 계장으로 있었던 친구를 통해 돈 받은 명단을 입수할 수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찰관과 타사 언론계 후배도 20여명의 명단에 끼어있었다. 연루된 후배가 혼이 나간 듯 사실 확인을 해왔다. “자네 이름은 없데”라고 거짓 답변을 했던 추억이 씁쓸하게 재생된다. 이 기사는 사장되고 말았다.


광주일보 지역 주재기자 아들이 강도 상해 혐의로 구속됐던 사건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생이었던 박 모 군이 친구 2명과 함께 낮에 주거를 침입해 집에 있던 여인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이 여인은 광주지검 수사관 부인이었다. 학생 부모는 외아들인 자식 좀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를 외면할 수 없어 수사관에게 통사정을 한 끝에 화해서를 받아냈다. 이를 토대로 검사장을 들볶아(?)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처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눈뿌리던 겨울밤 교도소를 나온 박 군은 그의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 후 단 한번도 연락이 없다. 그당시 선처를 결행한 검사장과 수사관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불가 사안이다.그들은 지금도 존경받는 지역 유지다.

 

후배들에게 술 자제 간곡히 당부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80년대 후반에는 시국사건이 봇물을 이루었다. 조선대 이철규 4수원지 변사사건, 중앙대 안산캠퍼스 학생회장 거문도 변사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철규 민주조선 편집장 사건은 1개월간 중앙 언론사가 톱으로 다루었다. 중앙언론사 법조 캡이 총출동할 만큼 전국을 뒤흔든 사건이다. 신경민 국회의원(MBC),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한국일보)등이 광주에 파견됐던 법조팀장들이다.


기자는 멋진 직업인이다. 무관의 제왕, 제4부의 요원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멋지지 아니한가. 스마트한 직업인의 놓칠 수 없는 전제 조건은 기자는 글 쓰는 직업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락 구성이 엉성한 기사나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정론의 길을 걸었던 송건호 선생은 후배들에게 술 자제를 간곡히 당부했다. 언론계 거목의 글을 읽고 후회와 깨달음의 감정이 일었던 과거의 편린도 빛 바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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