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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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4-06-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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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길을 묻다
고 규 석
시인, 광주일보 기자(목포)
사월도 잔인한 사월에
흔들리는 건 노란 리본인가 바람인가
상여도 없이 뒤따르는 곡 한소절도 없이
흔한 묘비명 하나 남기지 않고
꽃이 진다 주검이 쌓인다
이 아름다운 가이야의 정원에
계절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에둘러 간 삼백 송이의 희망을 묻었다
오월도 짙푸른 오월에
아낌없이 푸른 나무들이 묵념을 올린다
풍장으로 사라져간 꽃들의 안부를 묻는다
이 땅에 살아남은 자들은
오금 저린 분노와 우두망찰한 통곡으로
갑오년의 봄을 송두리 채 반납했다
힘겹게, 가슴 저릿한 고통을 참고 견디며
희미해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앙구며
애간장을 태우던 기적은 끝내 우리를 외면했다
보았는가, 아침 이슬보다 맑고 귀한 영혼들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섬이 되어
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울부짖는 것을
들었는가, 살려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
간절한 그 이름, 엄마를 목 놓아 부르며
얼마나 절박했으면
캄캄한 어둠 속 절대 절명의 빛을 찾아
벽과 유리창을 긁느라 손톱마저 다 빠져버린
그 한 맺힌 외침을
잊지 않겠다 꿈에라도 잊을 수 없겠다
운동화 한 짝은 돌아왔는데
아직도 물살 거센 맹골 바다 속을 떠돌고 있을
순수하고 아름다워 이름 부르기 조차 아까운 아들딸이여
미안하다는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이 기막힌 천형 앞에
누군들 죄인이 아니랴
한번만 안아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절규가
다시는 이 땅에서 울려 퍼지지 않기를
이 칠흑 같은 어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살아남아 부끄러운 사람들 가슴마다
꽃다운 주검 헛되지 않게
구명조끼 보다 붉은 주홍글씨를 아로 새겼으니
이제, 어둡고 차가운 물속을 떠나
평온한 하늘 위로 날아올라
언젠가 이 땅에 봄이 오는 날
이름 모를 풀꽃들로 피어나면
살아서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그대들의 꿈이
다시 피어난 걸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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