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역사…펜 놓지 않겠습니다”-‘여수·순천 10·19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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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12-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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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펜 놓지 않겠습니다”
‘여수·순천 10·19 역사기행’
전북·제주 등 기자 20명 참여
당시 사진·기록에 참상 오롯이
“4·3과 여순 명예회복 힘쓸 것”


여수·순천 10·19 사건 77주년을 맞은 올해,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 4년이 되어가지만 진상규명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70년 넘는 통한의 세월을 버텨 온 유족들에게 명예회복의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흐르고 있다.
여순사건 항쟁지를 직접 둘러보고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광주전남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가 주관한 ‘2025 여수·순천 10·19 역사기행’이 지난 10월 2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열렸다. 특히 이번 여순사건 세미나에는 전북·제주 기자 등 총 20명이 참여해 지역을 넘어 아픈 역사를 함께 느끼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첫 일정으로 순천 10·19 평화공원과 동천 제방을 둘러봤다. 지금은 벚꽃길로 유명한 동천이지만, 1948년 이곳은 봉기군과 경찰이 치열하게 교전했던 참혹한 현장이었다.
이날 해설사로 선 임송본 중앙위원(여순10·19사건위원회)이 보여준 당시 사진 자료에서 치열했던 생사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칼 마이던스 미군 종군기자는 제방에 쓰러져 있던 경찰 희생자들을 촬영해 세계에 전했고, 사진 속 장면은 7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임 위원은 “여순사건은 1948년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형의 역사”라며 진상규명에는 무엇보다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주철희 박사(함께하는남도학연구원 이사장) 특강에서는 여순항쟁은 단지 9일간의 폭동이 아니라, 1948년부터 지리산 입산이 해제된 1955년까지 6년 6개월에 걸쳐 전남·전북·경남으로 확산된 국가폭력의 역사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짚었다.
주 박사는 “최소 1만5000 명에서 최대 2만5000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순사건은 법 제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고, 사회의 역사 인식이 바뀌어야 제대로 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6월 문을 연 여순사건 역사관은 신월동 제14연대 주둔지에 조성돼있다. 역사관 벽면에 쓰인, 당시 뼈아픈 현실을 힘없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 하나하나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노을이 진 시각에 마주한 14연대 주둔지는 더욱 쓸쓸했다. 한때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주민 강제 이주와 군사시설 건설로 깊은 상처를 안아야 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군 수상비행기 해상 활주로, 당시 무기고로 사용된 동굴 등은 근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이튿날에는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를 찾았다. 부역 혐의로 끌려온 민간인 수백 명이 총살된 뒤 암매장된 곳. 이곳에 세워진 위령비 뒷면에는 ‘1948년 10월 19일’과 ‘2009년 10월 19일’이라는 날짜 사이에 ‘……’ 말줄임표가 새겨져 있다. 아무 말 없이 점 여섯 개만 덩그러니 새겨진 비석을 보니 미완의 진실과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었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여진 곳, 만성리 형제묘도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이 무거웠다.
경남 하동군 보도연맹원이 학살돼 암매장된 광양 매티재 유해발굴지 현장도 살폈다. 최근 발굴된 유해 9구와 고무신, 탄피 등의 유류품이 발견됐지만, 숲과 풀에 덮여 흔적조차 알아보기 어렵게 방치돼있었다.
기행 마지막 일정으로 기자들은 순천만국가정원과 습지를 거닐며 한껏 깊어진 가을을 만끽했다. 제주, 전북 기자들은 드넓은 정원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전남에 다시 오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번 여순사건 역사 현장을 따라가며 마주한 이야기들은 기자로서 무엇을 기록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김기호 제주MBC 기자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삶은 변화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던 기행이었다. 엄혹한 시절 참혹한 기억과 공간을 지키고 표지석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 노력했을 모든 선배들께 감사함을 느꼈다”며 “역사적 순간, 맞닿아 있는 제주4·3과 여순이 수많은 죽음으로만 기억되는 슬픈 사건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항쟁으로도 기록되기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김슬기 전북도민일보 기자는 “호남권 기자들이 함께 여순사건을 짚어보며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처와 책임의 문제를 깊게 생각하게 됐다”며 “여순사건이 과거에 머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역사임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77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더디지만, 진실을 잇고 알리는 일에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아픈 역사로만 남지 않고, 여순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고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
글·사진=양재희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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