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그날…말로만 듣던 ‘언론 통제’ 일어날까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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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01-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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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그날…말로만 듣던 ‘언론 통제’ 일어날까 조마조마
너나 할 것 없이 기자들 급히 복귀
포고령 내려지자 일선 혼란 가중
광주일보·무등일보는 호외 제작도
광전기협 “尹 사퇴하라” 촉구 성명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8분. 하루를 정리하려는 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갖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회사 식구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던 기자들, 식구들과 오붓한 저녁 시간을 갖고 있던 기자들 모두 사무실 또는 현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말로만 듣던 계엄이다. 1980년 5월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보도가 통제될지조차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사건 기자들은 군의 움직임부터 살폈다.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홍보 담당과 연락되지 않아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경찰 또한 잘 모른다는 답뿐.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은 혼란함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기자들은 여러 현장에 급파됐다. 시민사회가 집결하는 금남로로, 긴급 합동회의가 열린 광주시청으로, 많은 시민이 있을 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도심 번화가 등으로. 같은 시각 서울 주재기자들은 아수라장인 국회에서 취재는 물론 각 편집국에 국회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느라 진을 뺐다.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현장에서 한 줄의 소식일지라도 취재하고 보도했다. 혼란한 지역민에게, 특히 계엄의 공포를 다시금 느끼고 있을 이들에게 관련 소식을 무어라도 전하고자 했다. 언론 통제 등의 내용이 담긴 포고령이 내려지며 날이 밝은 후엔 기사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협마저 들었다.
이날 광주일보와 무등일보는 각각 2P, 4P 호외를 만들어 배포했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고 있는 시대에 호외 발행은 시국의 엄중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광주일보는 80년 당시 호외에 기명을 쓰지 않았던 전례에 따라 지면을 제작하다 오전 1시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통과되자 기명을 넣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무등일보는 윤전기를 보유한 유일한 지역 언론이기에 언제든 계엄군이 통제하러 올 것 같은 불안을 안고 호외를 제작했다.
오전 4시 30분께 계엄령은 해제됐다. 모두 ‘어이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해제 이후의 취재에 돌입했다.
한 통신 기자는 “계엄이 내려진 순간부터 모두 긴장하며 취재하고 관련 기사를 준비했는데 새벽녘에 계엄이 해제됐다”며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다들 새벽 5시부터 사무실에 모여 관련 기사를 작성하고 취재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4일 오후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기협은 성명서에서 “한밤중의 계엄령 발표로 광주는 45년 전을 떠올렸다. 매년 5월 18일마다 상기되는 비극이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졌다”며 “광주전남지역 기자들은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지키는 최일선에서 국민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협은 “포고령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말로만 듣던 보도 통제가 관 뚜껑을 열고 되살아났다. 기사 한 줄 한 줄이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며 “다행히 계엄령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국민이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와 그 본령이기도 한 언론 자유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단죄돼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 이후, 탄핵 정국을 맞아 시국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해 ‘부끄러워 붓을 놓’아야하는 위협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 믿는다.
김혜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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