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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던트 시즌2,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 정의진 kbc광주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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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1-09-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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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던트 시즌2,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10년 기자생활 쉼표, 다시 찾은 대학
‘그래 이게 나였지’ 감사했던 1년
복직 동시에 후회막심 ‘내 발등을…’
다만 분명하게 달라진 건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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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사 4학기 마지막 수강신청 사진(위)과 서강대 여성학과 사무실.

 

 기자라고 적힌 명함에 기대 지내온 지 10년이었다. 돌아봤을 때, 역할에 충실한 시간보다 그 자리에 취해 머물러 온 기억들이 더 진했다. 그런 내게 페미니즘은 선택의 여지없는 공부였다. 그렇게 10년 만에 기자 생활에 쉼표를 찍고, 다시 캠퍼스를 밟았다.
지난 1년을 적지 않고는 지금의 글이 있을 수 없기에 짧게 요약해 보자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요즘’이었다. 물론 기자로서 이력은 쌓이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나와 내 주변을 재정비하고 채우는 매일이었다. 당시의 소회를 적은 글로 애정하는 이들에게 나의 또 다른 부캐 ‘츤데레’를 대신한다.

 

#20201231 #목요일 어제와 다를 거 없는 오늘이었다.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비웠다. 밤새 대여섯 번은 바뀐 꿈을 되새김질하며 로또를 살 만한 ‘껀덕지’는 없는지 의미를 부여해보고, 굳이 찾아낸 명분에 5천 원을 챙겼다. 발목까지 차오른 눈와 새벽달을 찍어 보낸 이들의 따뜻함에 가느다란 미소가 차올랐다가 올해 내 곁에서 온기를 더해준 이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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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한 해였다. 갑작스런 휴직 소식에 일일이 응답하지 못할 만큼 밥 한 끼 사먹이겠다는 목소리들에 벅찼고, 오다 주웠다며 츤데레 용돈을 넣어준 이들도 은인처럼 나타났다. 시간 내어 나의 새로운 둥지를 찾아와 준 동생들, 그저 나의 하루가 궁금해서 자주 꿋꿋하게 안부를 물어와주고 다정한 글귀와 흥딘 세포를 깨우는 음악을 건네준 이들, 나열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선물 받은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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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다를 거 없는 내일도 분명 오늘처럼 고마움을 기록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내년엔 오늘보다 늘 내일이 기다려지는 밤이길 바라본다.

 

상투적으로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복직을 하고 학업과 병행을 하면서 지난 1년과는 또다른 일상과 ‘싸워내야’ 했다. 익숙했던 하루에서 벗어나, 1분 1초를 새롭게 정비해야했기에 스스로를 채찍하는 일도 잦아졌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자기 돌봄’의 의미에 대해 ‘앎’을 익혔다고 생각해왔는데, ‘아는 것’과 ‘체화’는 분명 달랐다. 복직 후 3개월 만에 끄적인 짧은 일기가 당시 나의 멘탈을 제대로 보여준다.

 

#20210419 #월요일 매일 여러 명의 ‘나’와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가장 많은 수의 ‘정의진’이 요구되는 날이 있다면, 단연 월요일이다. 국회로 출근 후 수업 시간에 맞춰 다시 집으로 돌아와 3시간의 비대면 강의를 소화하고,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추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업무 계획을 올린다. 수업 중간 중간 울리는 휴대폰은 마음만 졸인다. 내가 발제를 맡은 날은 더욱 그렇다. 복직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아직 허니문 기간인지라 저녁 약속이 빠듯하지만, 가끔은 내게, 그리고 주위에 ‘선언’한다. “오늘은 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논문을 써볼 참이야. 벌써 세 달 가까이 미적댔거든. 이젠 움찔거릴 때도 됐잖아?”

 

지난 18일이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맞춰 여명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됐지만 갈비뼈까지 진동되는 심장 소리에 기어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지막 수강 신청 날이었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려 호호 불어가며 먹어도 여유 있는 시간이었는데, 손은 분주히 노트북을 쫓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이 감정은 뭐지? 글로 풀어낼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혀 홀로 킥킥대며 웃다가 울었다. 설레기도 짜증나기도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약간의 두려움도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이런 감정이 밀려오는 게 처음 있는 일이라, 또 감사한 시간을 선물 받았구나 싶으면서도 이 부담을 견뎌내야 한다는 압박도 적지 않았다. 물론 수강 신청은 수월하게 해냈다.
쌓인 과제는 많다. 당장의 스케줄이라면 종합시험을 준비해야하고, 졸업논문도 써야한다. 마지막 학기 수업에 따른 여러 과제도 맞닥뜨려야하는 현실이다. 아, 일도 한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나’다. 수치로 각인되는 물리적인 시간에 쫓기지 않기로 했다. 체감의 속도는 분명 나만의 것이니까.
/ 정의진 kbc광주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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