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흔 품은 침묵의 목격자’ 전일빌딩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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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0-06-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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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흔 품은 침묵의 목격자’ 전일빌딩의 경고
유일한 헬기사격 물증…전두환 거짓말 밝혀냈다
<사진설명> 지난 2016년 12월13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 10층 옛 전일방송 기술부에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공학부 법안전과 총기연구실장이 5·18 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탄흔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5·18사적지 제28호이자 ‘광주 금남로 1번지’ 전일빌딩이 품어온 5·18 헬기 사격 탄흔은 ‘그날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전일빌딩은 국가폭력의 상흔을 무려 37년 동안 ‘말없이’ 간직해 왔다. 광주학살 주범들에게는 ‘진실을 감추려는 어떠한 공작도, 역사 앞에선 반드시 밝혀진다’는 묵직한 경고를 했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이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지던 2016년 12월13일, 전일빌딩 10층 천장·창틀·기둥에서 발견된 탄흔 193개는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이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유일한 물증이다. 전일빌딩 안팎에 남겨진 탄흔은 확인된 것만 모두 270개에 이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7년 정밀감정으로 헬기 기관총 난사를 공식화했고, 2018년 국방부 특별조사로 헬기 사격은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 인정됐다.
1980년 5월 전일빌딩은 금남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10층 중앙 기둥(창틀보다 낮은 지점)에 남겨진 탄흔과 각도로 미뤄 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1980년 5월19일부터 31사단에 무장 헬기 3대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군 기록과 각종 지침, 목격자 진술도 헬기 사격을 뒷받침했다.
결국, 전일빌딩 탄흔은 ‘자위권 발동’이란 신군부의 허위 주장을 완벽히 뒤집었다. 5·18 진상 규명에는 기폭제가 됐다. 정권 찬탈을 위해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자행한 ‘총사령관 전두환’을 법정에 세웠다. 왜곡·은폐로 점철된 전씨 회고록의 출판·배포 금지 판결도 이끌었다.
전일빌딩은 역사·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개관했다. 국과수 최초 감정 때 총탄 흔적 개수인 ‘245’를 토대로 건물 이름도 ‘전일빌딩245’로 명명됐다. 최근 전두환 재판을 계기로 재조사를 거쳐 탄흔 25개가 추가로 나왔다.
전일빌딩은 5·18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대항했던 상징적 장소인데도 크고 작은 부침을 겪어왔다. 1968년 7층 건물로 준공된 뒤 4차례 증·개축을 거쳐 1980년 현재의 10층 규모를 갖췄다. 1980년 이후 소유주가 몇 차례 바뀐 뒤 2011년 법원 경매로 나왔다.
빌딩을 산 광주도시공사는 철거 뒤 아시아문화전당 주차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5·18 역사 공간을 원형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철거 계획이 철회됐다. 다행히 광주시가 리모델링 전 5·18 흔적 찾기 조사에 나섰고, 뜻밖에도 헬기 사격 탄흔이 발견돼 40년 전의 진실, 5월의 아픔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현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헐릴 위기에서 살아남은 전일빌딩은 민중항쟁의 숭고함과 40년 전 상흔이 깃든 5·18사적지 관리·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현재 5·18사적지 32곳 상당수가 대책 없이 방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유지에 속하는 11곳 중 절반가량만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5·18의 역사·기억·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광주적십자병원도 민간 매각 위기에 놓여 있다.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은 ‘광주의 자기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민중항쟁 역사상 가장 순수하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연대하며 자신을 초월·희생했던 5·18의 숭고한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선 사적지 보존에 대한 세심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진실을 감추는 학살 책임자와 역사 왜곡 세력에게 참회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전일빌딩이 온전히 보존됐기 때문이다. 광주는 전일빌딩이 주는 교훈, 전일빌딩이 37년 간 말없이 간직해온 진실, 역사적 울림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글·사진 = 신대희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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