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기자상] 대상 - 광주매일신문 안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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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01-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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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올해의 기자상 대상 광주매일신문

“국가로부터 소외된 이들 더 이상 없기를”
대상이라는 큰 결실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사를 의미 있게 봐주신 심사위원들과 취재 초반부터 격려의 말을 아낌없이 건네준 선·후배 동료 기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어느 무적자(無籍者)에 대한 취재·보도는 우연히 시작됐다. 그를 처음 법정에서 봤을 땐 이번 취재가 반년 넘게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당시 그는 ‘성명불상’으로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었고, 그저 이 사례가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다. 재판이 끝난 후 취재를 이어가다 그가 무적자라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 느꼈던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무적자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의미 파악부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자 기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첫 보도 후에는 후속 기사를 이어가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선고 이후 법정에서 떠난 성명불상 피고인을 놓쳐버린 탓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포기해야 하나’ 낙심하던 중 방법이 떠올랐다. 그를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을 찾아 연결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음주운전 사건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적자의 특정후견인과 연락이 닿았고, 이때부턴 취재가 비교적 원활했다.
짧게나마 보고 들은 무적자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국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50여 년간 살아온 그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위법 행위로 수사기관에 적발됐을 때를 제외하면 국가가 무적자를 먼저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고, 이들에게 법이란 처벌의 기능으로만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됐더라면 그의 삶이 지금보다는 괜찮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고 펜을 계속 들게 했다.
개인에 대한 보도 후 무적자 전체에 대한 취재를 위해 광주·전남 행정기관은 물론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혹시라도 다른 무적자를 찾을 수 있을지, 신분을 얻게 된 다른 사람이 지역에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돌아온 답들은 보도에는 도움이 됐으나, 무적자에 대해선 굉장히 암울했다. 무적자 자체를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곳들도 많았고, 비슷한 처지의 무호적자에 대한 전수조사는 진행했으나 보존 기간 만료로 관련 기록이 폐기됐다는 곳도 있었다.
취재할수록 국가가 무적자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이라도 구제의 첫걸음인 전수조사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중앙부처는 물론 지역 행정기관에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무력감만 깊어지던 중 내가 만난 무적자가 마침내 신분을 얻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그에게 ‘이송(李松)’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꿈만 같았다. 법원의 결정에 내 기사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큰 도움이 됐다”는 무적자와 특정후견인의 감사가 내겐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이번 수상이 유독 감사한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을 살펴봐 주신 것 같아서다.
사실 누군가의 아픔을 보도해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당사자의 허락을 받기는 했으나 인권 ‘사각지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이기에 자신의 현실에 대한 취재·보도가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씁쓸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수상 소식을 들고 그분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되려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며 환히 지어 보여준 미소 덕분이었다. 감동의 격려를 받고 돌아온 뒤 수상 소감을 준비하면서 잠깐이나마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0여 년간 무적자로 살아오다 마침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송 씨의 남은 삶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안하길 소원한다. 또 무적자 구제의 첫걸음이 될 전수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이들이 더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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