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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 소식 전한 3년 7개월 행복했습니다”-백희준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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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9-06-14 15:54
  • 조회수 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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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기자협회보 편집위원을 마치며]


“선·후배 소식 전한 3년 7개월 행복했습니다”
U대회부터 기협 중국어학당까지 추억 오롯이 지면에

완벽 ‘팀워크’ 편집위에 감사… 매달 소소한 소식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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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준 광주일보 기자는 3년 7개월 간 활동한 편집위원을 마친다.

앞으로 독자의 설레는 마음으로 광주·전남 기자들의 소소한 소식을 접할 생각이다. 사진은

처음 협회보에 취재기를 올린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때 네팔 선수단과 함께한 모습.

 

3년 7개월간의 광주·전남기자협회 편집위원 활동을 지난 5월로 마치게 됐다.
광주·전남기자협회보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2014년 10월 수습을 뗀 기자로서의 포부를 올리면서다.
그날의 신문은 아직까지 고이 모셔두고 있다.
신문을 꺼내볼 때마다 “선배·동료기자가 함께 ‘언론인’이라는 테두리에 묶이는 데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당시의 다짐에는 변함이 없다.
협회보를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아무 것도 모르던 때 전임 편집위원 선배의 제안이 왔다. “너 편집위원 해볼래?”라는 선배의 권유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이걸 해도 되나?”였다. 입사 3년차에 ‘기자·출입처가 보는 신문’을 만드는 데 부담감이 컸다. 뒤돌아보면 멋모르고 뛰어들었기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협회 홈페이지에서 내가 쓴 기사를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다양한 소재들이 검색됐다.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취재기를 담은 ‘광주 U대회-청춘은 통했다’(2015년 8월)와 회사 선배를 전격 인터뷰한 ‘광주일보 ‘나박’ 나명주 부장 안되는게 없다 뭐든 물어봐’(2015년 10월), 처음 편집위원회 워크숍을 다녀와 쓴 ‘협회보 밑그림 그리며 잔 헤던 밤…별 헤던 밤’(2016년 1월) 등이 있었다. 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던 기자협회 중국어학당에 참여한 소감을 담은 ‘니하오~ 왕초보 기자들 어렵지만 재미있어요’(2016년 4월)와 ‘기자협회 김영란법 설명회-광고·협찬…회사 수익 직결 사안 초관심’(〃9월), ‘기자협회 통계 교육-통계 ‘맹신의 함정’…4·13 총선 답습 말아야’(〃11월) 도 지면에 실어졌다.
편집위원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건 전임 편집위원회 때였다.
김재정 전 편집위원장(광주매일신문)과 김지영 편집위원(광주일보) 그리고 필자는 ‘월말 삼총사’로 2년 동안 함께 했다. 각 지회 편집위원이 모아준 기사와 사진들에 제목을 뽑고 조판한 것은 내게 다시없을 신선한 경험이었다.
협회보 제작으로는 ‘초보’였던 우리는 편집 첫 날 오전에 모여 자정에 퇴근할 정도로 터덕거렸다.
‘면을 어떻게 메워야하는지’, ‘어떤 제목이 어울릴지’, ‘틀린 글자는 없는지’ 모든 것이 막막한 시절이었다. 피곤에 찌들어 반쯤 감긴 눈으로 퇴근길을 함께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협회보를 향한 선배들의 열정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는 그룹 채팅을 만들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브레인’ 역할을 한 오광록 전 협회 사무국장과 장미옥 협회 간사, 유영주 사원(광주일보)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협회보 편집을 직접 하던 시절 저지른 실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까마득한 선배 이름을 제목에 잘못 올리거나 후배 기자의 신입 포부를 뒤바꿔 배치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당사자를 마주치면 악몽이 떠올라 아찔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집위원회에서 활동했더니 지회장보다 오래 활동하게 됐다.
여러 언론사의 선·후배 얼굴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지만 한 달에 한번 지면을 펼쳐 기자들의 소식을 접하는 즐거움은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백희준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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