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기억이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살았다-천상 어머니였던 고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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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8-04-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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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기억이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살았다
천상 어머니였던 고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후회·그리움 속 무상한 31년의 세월, 이제 웃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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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지난 1월 31일 취재차 방문한 광주 동구 산수동 고 이한열 열사의 집에서
어머니 배은심 여사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 사진=오세옥 무등일보 사진부장
“안하면 안될까…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 이제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화기 너머 들리는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말은 거절이 아니라 차라리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에서 ‘배은심 인터뷰’로 검색만 해봐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6월 한 달 동안 배 여사가 정식 인터뷰에 ‘응해야만 했던’ 매체만 15곳이 넘는다.
그 기간 동안 ‘배은심’ 이름이 들어간 기사만도 269건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이뤄진 취재 요청이라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이 매번 가슴을 쥐어짜는 그 순간들은 진절머리가 나고, 차라리 피하고 싶을 것 같다.
그것을 다시 내가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고,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인생을 듣고 싶다’고 했던 말만 기억난다.
단순히 ‘아들 이야기’의 전달자가 아닌, 인간 배은심 여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수많은 이들로부터 들으셨을 말이겠지만 배 여사는 끝내 한숨을 쉬시고 며칠 몇시에 보자고 했다.
“그래도 내가 한열이 엄만게… 내가 해야제”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앞서 올해 초 영화 ‘1987’을 두 번 봤었다. 이한열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던 중 ‘영화 1987이 불러낸 광주·전남 열사들’기획 취재를 하게 됐고 배은심 어머니를 뵙게 된 것이다.
만나러 가는 길은 마음도 발길도 무거웠다. 비단 배 여사님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은 이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할 때마다 그렇다.
망자의 한을 풀자는 흥분감과 사명감이 북돋을 때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기억의 먼지를 털고 다시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가족을 만나야 할 때는 나의 행동이 최선일지, 이것이 어떤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왜 아침도 안 먹고 그런가. 뭐든 먹고 해야지.”
그런 잡다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 광주 동구 산수동 배은심 여사님 댁에 들어서자 배 여사님은 나무라기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배 여사님을 말렸지만 여사님은 주방에서 이내 전자레인지에 돌린 냉동 피자 세 조각과 믹스 커피를 내왔다.
어머니가 끼니를 거를까봐 따님들이 장을 보면서 사온 것인데, 다시 끼니를 거른 손주뻘 되는 남자를 위해 놓여졌다.
그 모습에 이 집에 들어오며 끝내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던, 1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하고 말았다.
결국 인터뷰는 이모할머니와 조카가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흘렀다.
배 여사님은 내가 그렇듯 아직도 아들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했다.
“어째 아픈 사람들끼리 또 만났당가.” 배 여사님의 말에 “긍께요”라며 씁쓸히 맞장구쳤다.
아들의 뜻을 이어 거리에서 투쟁하던 시기의 배 여사님은 ‘쎈’ 어머니셨다고 들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정 많고 눈물 많은 어머니였다.
삶에 있어서 원하는 순간도, 원치 않는 순간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와 그것을 공유할 때 마음이 놓인다.
삶의 순간을 공유한 가족, 친구, 동료 그 외 누군가가 나의 맺음말을 위로와 격려로 써 준다면 한이 없는 삶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얼마 전 출간된 이한열 열사 관련 책이 놓여 있기에 보셨냐고 물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시던 어머니가 “이제 좋은 것도 보고 싶고 그러네”라고 그러시기에 재밌는 책 한권 선물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어떤 책을 드릴지 고민 중이다. 예쁜 사진이 많은 사진집을 드리고 싶은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서충섭 무등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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