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검열관실 재현, 언론 공동체의 단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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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5-04-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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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검열관실 재현, 언론 공동체의 단결이 필요하다

1980년 5·18 당시 옛 전남도청에 있었던 ‘보도검열관실을 복원하자’는 토론회가 지난 2월 26일 중요한 과제를 제시하며 막을 내렸다. 광주·전남기자협회도 이 토론회를 후원함으로써 함께 했다.
한시적이라도 소소하지 않아
발제에 나선 류한호 광주대 명예교수는 “비상시기에 정부가 행한 언론통제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 현장을 보존하는 일은 어렵다.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검열을 포함한 언론에 대한 통제는 소소한 일로 치부되기 쉽다”고 전제하고 “전남도청의 보도검열관실은 불법적인 권력에 대한 시민항쟁과 결합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드물게 남아 있는 장소성이 인정되므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특별한 언론통제 현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계엄이나 전쟁 시기의 언론 검열을 소개하는 기념공간으로 독일 베를린의 슈타지 박물관(Stasimuseum)과 미국 워싱턴 D.C.에 있던 미디어박물관 ‘뉴지엄(Newseum)’을 들었다.
보도검열관실 경험을 중심으로 발제한 나의갑 전 5·18기록관장은 2021년 복원사업 초기에 5·18 당시 전남도경(경찰국)과 전남도청 인사들을 문체부 복원추진단(이하 ‘추진단’)에 소개하는 등 협조하면서 “보도검열관실 복원도 필요하다”고 요청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진단은 지금에 와서 ‘사진이 없다’ ‘뒤늦게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5·18 10일 동안이 복원의 목표이며, 보도검열관실은 이 기간동안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항쟁기간인 20일까지 분명히 검열을 받았다”고 나 전 관장은 술회했다. 또 추진단이 도청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해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 보도검열관실’이 전남도청 별관 2층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 전 관장은 “추진단측이 뒤늦게 보도검열관실 존재를 알게 됐다면 복원 요청이 없더라도 스스로 복원계획에 포함시켰어야 직무상 도리를 다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도청 복원 ‘킬러콘텐츠’로
옛 전남도청 복원 목적은 1980년 5·18 때의 모습을 가능한 원형대로 보존하여 이를 통해 불법적인 공권력의 실상을 확인하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국민들이 체감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5·18 최후의 항쟁지로서 역사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킬러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이번 토론회에서 3명의 토론자들도 여러 제안을 해주었다.
항쟁지도부 중심으로만 재현할 것이 아니라 △5월 21일 13시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발포 상황과 시민들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27일 도청 본관 1층에서 울려 퍼졌던 새벽방송 △상무관에서 검시를 마치고 청소차에 실려 간 사망자들과 이를 지켜봐야 했던 유가족들의 비통한 심경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에서 밝힌 최후진술 △뒤늦게나마 반란군부가 내란목적 살인죄로 단죄된 과정, 그리고 △보도검열관실을 재현해 당시 삭제된 기사 내용 등도 함께 소개해야 5·18의 대표적인 전시공간이 된다고 했다.(허연식) 보도검열관실을 통한 반란군부의 언론통제가 5·18민중항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규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례가 될 것이므로 추진단이 책임있는 국가기관으로서 자료의 수집, 구술 증언 등 공인된 사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홍성칠) 또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으려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규명과 자료수집도 해야 한다고 했다.(이관우) 시민설명회 때도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5·18을 주제로 한 작품들의 전시도 5·18 기념공간을 차별화하는데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다.(윤광장)
‘5·18 양비론’ 잠재워야
광주언론으로서는 당시에 5·18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못한 것이 치욕이자 회한으로 남아 왔다. 이제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최후 항쟁지가 복원되는 시대를 맞았다.
여기에 덧붙여 언론자유를 탄압했던 곳을 세계에서 유일한 공간으로 재현하자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단 말인가. ‘복원이냐 재현이냐’, ‘5·18기간 중에 있었다 없었다’를 따지면서 있었던 역사까지 외면한다는 게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우리는 5·18민중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희석시키고, 뒤늦게 조사를 하느라 진상발굴에 미흡하여 황당하게 양비론이 난무하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보도검열관실 콘텐츠 역시 복원사업에 포함시키지 못한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현재의 언론에게 ‘무능한 기록자’로 매서운 비판을 쏟아 낼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우리 언론계가 모두 힘을 합쳐 언론자유를 탄압했던 현장을 살려 역사적·교육적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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