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정상필 작가의 단상] 프랑스의 지역언론을 보다<2> 쉬드 우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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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4-05-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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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의 도시’ 보르도서 첫 지역 일간지 탄생
프랑스의 지역언론을 보다<2> 쉬드 우에스트
풍족한 도시 기반, 뉴스 생산 최적의 여건
1944년 창간호서 보르도 해방 소식 다뤄
사시 ‘사실은 성스럽게, 의견은 자유롭게’
사업 확장 거침없지만 비정규직 문제 말썽


파리의 중심가에 사는 ‘찐’ 파리지앵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실제로 파리 안에 사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인 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오늘 아침 신문 봤어?”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이들은 “무슨 신문?”이라고 되묻지 않는다. 대화에 등장하는 신문은 지역 일간지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소 과장이 섞였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에서 지역 일간지의 영향력을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다.
위에 소개한 우스개가 지역 일간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나타낸다면, 딱 떨어지는 수치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팩트도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신문발행부수 인증기관 ACPM(Alliance pour les Chiffres de la Presse et des Médias)의 일간지 유가부수 발행 순위다. 중앙과 지역, 종합지와 전문지를 모두 아울러 종합한 상위 10위권 일간지의 면면을 살펴보자.
압도적 1위가 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인 것도 놀랍지만, 더 한 것은 10위 안에 든 언론사의 절반 이상이 지역 일간지라는 사실이다. 좌우를 대표하는 두 중앙 언론 <르몽드>와 <르피가로>가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중앙 일간지의 체면을 살렸을 뿐 10개 중 6개는 지역 일간지이다. ACPM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52개 주요 지역 일간지의 총 발행부수는 360만 부로 중앙 일간지의 140만 부보다 배 이상 많다. 이 같은 수치들을 통해 프랑스인의 뉴스 소비 경로를 읽을 수 있다.
지역 일간지로는 순위표에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 곳이 <쉬드 우에스트>이다. 프랑스 신문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보면 이 곳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프랑스에 처음으로 일간지가 등장한 것은 1777년이다. <주르날 드 파리>는 그 이전에 있어왔던 정치 또는 문화 관련 매체가 비정기 간행물이었다는 점에 착안했다. 처음에는 주로 파리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와 각종 문화 행사들을 다루며 ‘매일’ 발간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곧바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주르날 드 파리>가 대중들 사이에 지식 유통의 큰 흐름을 주도하면서 1789년 대혁명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역 일간지는 파리의 사례 이후 7년이 지난 뒤 지금의 보르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784년 9월 첫 발행된 <주르날 드 기옌>은 1790년까지 6년 동안 지속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옌이라는 지명은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행정구역이고, 기옌의 주요 도시가 보르도였다. 보르도 인근 지역은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부유했고, 파리의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곳으로 통했다.
1880년대 전신 및 전화 시스템이 도입되던 시기,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파리와의 직통 전신 시스템을 설치한 곳도 보르도였다. 이것은 파리에서 생산되는 뉴스를 보르도에서도 동시에 인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했다. 21세기의 보르도 역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파리에서 600㎞에 달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TGV로는 2시간 거리여서 보르도 시민들은 파리와 일일 생활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르도의 대표 일간지 <쉬드 우에스트>는 남서부 지역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944년 8월 창간된 <쉬드 우에스트>는 19세기 중반부터 보르도의 최대 일간지였던 <라 지롱드>가 나치 협력지로 지목되면서 폐간한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주인공은 <라 지롱드>의 자매지였던 <라 프티트 지롱드>의 편집국장 출신 언론인 자크 르무안이었다. <라 프티트 지롱드> 역시 19세기 내내 혁명을 지지하던 공화당 계열의 개혁적 신문이었지만, 세계대전에 이은 나치의 폭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 2022년 프랑스 일간지 유가부수 발행순위
순위 | 매체명 | 일간 발행부수 | 구분 |
1 | 우에스트 프랑스(Ouest-France) | 60만2830 | 지역 일간지 |
2 | 르몽드(Le Monde) | 48만8802 | 중앙 일간지 |
3 | 르피가로(Le Figaro) | 35만4662 | 중앙 일간지 |
4 | 레퀴프(L'Equipe) | 22만271 | 스포츠지 |
5 | 쉬드 우에스트(Sud Ouest) | 18만9092 | 지역 일간지 |
6 | 르파리지앵(Le Parisien) | 18만8118 | 지역 일간지 |
7 | 르텔레그람(Le Télégramme) | 16만3996 | 지역 일간지 |
8 | 라부아뒤노르(La Voix du Nord) | 16만3268 | 지역 일간지 |
9 | 르도피네리베레(Le Dauphiné Libéré) | 14만6838 | 지역 일간지 |
10 | 레제코(Les Echos) | 13만9315 | 경제지 |
<acpm.fr에서 발췌>
전쟁이 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던 르무안은 한동안 보르도를 떠나 레지스탕스 내 정보 활동을 벌이다 보르도의 해방 소식을 듣고는 바로 달려와 새 신문 창간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보르드 인근 지역에서 독일군이 물러간 것은 1944년 8월14일이고, <쉬드 우에스트>의 창간호가 나온 것은 같은 해 8월29일이다. “시민들이 보르도의 해방을 축하했다.” 창간호 1면은 역시 개선한 드골 장군의 사진과 함께 보르도의 해방 소식을 가장 크게 다루고 있다. 사시는 “사실은 성스럽게, 의견은 자유롭게”이다.
<쉬드 우에스트>는 역사적으로 유행에 민감한 지역의 특성을 충실히 따라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지역 언론 중에는 처음으로 일요일자 신문을 별도 발행하기도 했다. 1968년 창립자가 사망한 뒤 아내와 아들이 뒤를 이어 신문사를 경영했고,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 뒤로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불어권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알베르 롱드르상 수상자를 세 번이나 배출할 정도로 실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노동법 관련 불미스러운 이슈도 있다. 21세기 들어 계약직 기자 채용 과정에서 불법이 인정돼 법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프리랜서 삽화가 해고 문제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중이다.
전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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