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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정상필 작가의 단상] 프랑스의 지역언론을 보다<1> 우에스트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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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24-03-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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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간 지킨 레지스탕스 정신, 거대 미디어 위협 막아내다

 

프랑스의 지역언론을 보다<1> 우에스트 프랑스

 

2차 대전 속 1944년 창간 프랑스 서부 지역지

일 유가부수 60만부, 중앙지 크게 웃돌며 1

비영리 법인에 그룹 경영권독립성 유지 비결

자유와 정의사시 내걸고 인본주의 헌장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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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ABC협회의 프랑스 지부 격인 신문발행부수 인증기관 ACPM(Alliance pour les Chiffres de la Presse et des Médias)이 발간하는 연간 보고서에는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실들이 포함돼 있다. 유가부수 발행 순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신문사가 중앙지가 아니라 지방지인 것이다.

프랑스 서부라는 뜻의 <우에스트 프랑스>(Ouest-France)1975년 이후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하루 유가부수 602830부를 기록한 <우에스트 프랑스>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력 언론 <르몽드>(Le Monde 488802)<르피가로>(Le Figaro 354662)를 멀찌감치 앞서 있다. 최고치는 2001년으로 매일 796736부를 찍어내기도 했다.

194487일 창간호를 낸 이후 올해로 80년째를 맞고 있는 <우에스트 프랑스>가 발행되는 지역은 프랑스 서부 14개 데파르트망(Département)으로 이른바 영불해협이 있는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역을 총망라한다. 데파르트망은 한국으로 치면 도() 쯤 되는 행정구역인데 해당 지역의 인구수를 합치면 1000만명을 웃돈다.

창간호 1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드골 장군과 연합군을 맞이하는 렌느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렸다. “드디어 해방”, “렌느가 해방군을 열렬히 환호하다와 같은 제목에서 당시 시민들의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신문 발행지역인 노르망디를 통해 들어온 연합군의 진격 소식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기에 앞서, <우에스트 프랑스> 독자들에게는 지역 뉴스였다.

서부의 거점도시 격인 렌느(Rennes)가 해방된 것은 84일이니까, 해방된 지 사흘 만에 새로운 신문이 창간한 것이다. <우에스트 프랑스>의 전신이라고 해도 좋은 <우에스트 에클레르>(Ouest-Éclair)가 폐간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18998월에 창간한 <우에스트 에클레르>2차 세계대전을 맞으며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여러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잠시 펜을 꺾고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나치에 협력하더라도 신문 발행을 지속할 것인가. <우에스트 에클레르>의 경영진은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 후자를 선택하지만 그 결정에 반대하는 두 언론인은 제 발로 신문사를 나오게 된다. 그렇게 신문사를 떠나 절치부심하던 폴 위탱-데그레(Paul Hutin-Desgrées)와 프랑수아 데그레뒤루(François Desgrées du Loû)는 해방되기가 무섭게 <우에스트 프랑스>라는 새 이름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나치 협력자로 구분된 <우에스트 에클레르>의 경영진들은 나중에 중형을 면치 못했다.

새 신문의 사시는 자유와 정의이고 여기에 이르는 세 가지 원칙은 인본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세 가지였다. 이들은 19906월 자체적으로 뉴스 헌장을 발표했다. 그 첫 줄부터 언론인이 지켜야 할 규칙, 즉 지적 정직성, 신중한 글쓰기, 인간 존중의 정신이 잘 반영돼 있다. “해를 끼치지 않고 말하고, 충격을 주지 않고 보여주고, 비난하지 않고 비판하고, 공격하지 않고 증언한다 ”.

1990년은 <우에스트 프랑스>의 역사에서 특별한 해다. 신문사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공동창업자인 두 명의 언론인이자 레지스탕스 운동가, (1888-1975)과 프랑수아(1909-1985)는 혼인으로 연결된 친족관계였기에 <우에스트 프랑스>는 사실상 이들 가문의 소유로 봐도 무방했다. 신문사의 경영은 가업을 이어받아 언론인의 길을 걸은 폴의 둘째 아들 프랑수아-레지스(1919-2017)가 주로 맡았다.

1961년 평기자로 입사해 가장 오랜 시간 신문사 운영에 참여했고, 사망하기 바로 이전 해인 2016년까지도 기고를 멈추지 않았던 프랑수아-레지스는 지금의 <우에스트 프랑스>를 있게 만든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프랑수아-레지스가 내린 1990년의 결단은 바로 비영리 법인 설립이었다. 그는 설립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협회는 사원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사원은 신문의 정신이며, 이것이 독자의 신뢰를 보장하는 신문의 힘이다. 이곳은 비영리 협회이며 배당금을 분배하지 않고, 주식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경영하는 방법을 안다면 독립성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는 내가 떠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본 민주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협회(Association pour le soutien des principes de la démocratie humaniste)라는 이름의 이 비영리 법인은 <우에스트 프랑스>가 포함된 우에스트 프랑스 미디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경영한다. 그룹 내 사업 영역은 일간지 외에 전문지, 라디오, 웹사이트, 출판사, 홍보대행사 등으로 다양하고 총 직원 수가 5500여명에 달한다. 법인은 각계인사 60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현 회장은 2010년을 전후해 르몽드 미디어 그룹 회장을 역임한 언론인 다비드 기로(David Guiraud)이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지배구조는 우에스트 프랑스 미디어 그룹이 자본과 이념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꼽힌다. 프랑수아-레지스는 외부든 내부든 모든 가능한 포식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문제이다. 1944년 이래로 우리는 신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신문이 그 누구의 수익원이 되는 것을 항상 거부해 왔다고 강조했다. <우에스트 프랑스>가 지방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체 판매부수 1위 신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게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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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필 글작가

파리8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광주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프랑스 여인과 결혼해 네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살다가 최근 다시 프랑스에 정착해 가이드와 운전을 호구지책으로 마련했다. ‘기사가 된 기자랄까. 지은 책으로는 메종 드 아티스트’, ‘메르씨 빠빠!’, 옮긴 책으로는 부자들의 역습’,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집 안에서 배우는 화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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