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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등단 뒤 현장 복귀한 박성천 광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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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3-03-19 16:42
  • 조회수 5,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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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는 반가움? 하지만 세월이 쌓은 '애증'도 만만치 않았죠."



11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광주일보 박성천(44) 기자는 짧은 소회를 먼저 던졌다. 지난 2002년 월간지 '예향'이 휴간되면서 회사를 떠났던 그는 올해 4월호로 복간되는 '예향'을 발판삼아 지난 1월 광주일보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낯익은 선배와 낯선 후배 사이에서 항상 웃었지만, '애증'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만큼 지난 세월의 '외출'이 야속했다고 했다.



지난 1994년 광주일보 편집부로 입사했던 그는 줄곧 '글쓰기'에 관심을 보였다. 광주일보 현직 기자로 지난 200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무지리의 새'로 당선, 등단했다. 타사 신춘문예로 글쓰기의 소질을 보인 그는 편집부에서 '월간 예향부'로 옮겼고, 펜을 잡았다. 전남대 영문과 재학시절 용봉문학상과, 오월문학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은 필력은 예향에서 꽃을 피웠다. 그것도 잠시, 예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자 설 자리는 사라졌다.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니 막막했죠. 내 미래와 진로가 불안했고. 가장 자신있는 것을 선택해야 했고, 글쓰기는 밥벌이로 이어졌죠."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문순태 교수의 지도로 소설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며 석사를 취득했다. 단순한 글쓰기보다 학문으로서 글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고, 전남대 국문과에서 2008'문순태 소설의 서사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학위가 필요했다"고 설명한 그는 지난 2011년 첫 소설집 '메스를 드는 시간'과 기행집 '강 같은 세상은 온다'를 펴냈다. 전남대와 목포대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지난해에는 '문순태 문학 연구-해한의 세계'라는 연구서를 출간, 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예향 복간을 앞두고 컴백 제의를 받게 된 그는 주저했다.



"광주일보 기자였다는 자부심, 그리움이 많았지만 그동안 바뀌어버린 언론환경이 좋지 않았고, 다시 입사한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는 예전부터 광주가 문화수도를 자처한 만큼, 예향은 분명 복간할 것이고,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11년을 쌓아온 학자의 길을 되돌리긴 어려웠다고. 주저함 끝에 강의와 기자를 병행한다는 조건으로 돌아왔다.



"오전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시선으로, 업무는 기자의 시선으로, 글은 작가의 시선으로, 스스로가 역동적이고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조화를 이룬다면 글쓰기에도 보탬이 되겠죠."



문화생활부의 문학담당 기자 겸 예향 기자로 일하게 된 그는 문학전문기자를 꿈꾼다고 했다. 전문가로서 독자들이 '박성천'이라는 이름만 봐도 '! 글 잘 쓰는 그 기자'라고 부를 정도가 돼야한다는 것. 11년의 공백을 두고 돌아온 그는 과거와 비교해 후배 기자들에게 바람도 남겼다.



후배들이 성실해진 반면 정적으로 변해 안타깝다고, 과거의 기자들은 야성과 모험을 즐겼지만 후배기자들의 엉덩이가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더불어 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는 주문도 전했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기자생활을 관둔 뒤 11년은 가혹했어요. 직장의 소중함을 느끼며 성찰의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 환경이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우리 후배들이 너무 좌절하기 보다는 이겨내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나를 사로잡는 궁금증이에요. 강사로서 자유롭고,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충만감이 있지만 소속감이 없는 이 직업이 두렵기도 했어요." 임동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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