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기자대표단 14명 베이징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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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전남기자협회
- 작성일 15-12-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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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지난 11월 10일부터 3박 4일간 베이징 연수를 떠난
광주전남기자협회팀이 천안문 광장에서 힘껏 뛰고 있다.(상)
기자원정대, 중국 심장부에 침투하다
만리장성·자금성·이화원…
나흘간 베이징 종횡무진
한치앞 안보이는 스모그 공격
흔들흔들 취권으로 격파
평화로운 광주전남기자문파에 한통의 밀고가 접수됐다. 중국 북경문주가 광주전남을 노리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첩보였다.
이 소식을 접한 기자문파는 비밀리에 정예요원을 파견할 계획을 세웠다. 선봉 정재영(KBC) 단장을 비롯해 덕장 임영호(CBS), 지장 최진수(목포MBC), 맹장 박정욱(광주일보), 용장 맹대환(뉴시스) 등 14명의 광주전남 소속 장수들을 끌어 모았다.
소집된 이들에게 ‘기자원정대’라는 부대명과 함께 북경문파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만리장성, 이화원, 자금성 등 북경문파 주둔지에 잠입해 적군 기세를 꺾으라는 지시였다.
기자원정대는 나흘동안 머무를 여비만 받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얼어붙은 중원에 첫발을 내딛다
원정대원들은 고국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시간 만에 변해버린 공기가 중원 땅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가을 날씨를 예상하고 출발했던 대원들은 북경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차가운 겨울 바람에 몸을 움추려야 했다. 겉옷을 걸치지 않은 이정민(광주매일) 장수는 사방에서 스며오는 찬공기에도 괜찮다며 웃어보였지만 이내 그의 입술은 떨렸다. 그러자 장아름(연합뉴스) 장수가 자신의 하나뿐인 목도리를 벗어주며 이 장수의 갑주를 두텁게 했다.
이 장수는 “추위에 내성을 가진 것이 내 특기다. 하지만 중국 날씨를 우습게 봤던 것은 내 실수다”면서 “장 장수 덕분에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몽환적인 만리장성
폐기넘치게 출발했던 기자원정대였지만 첫 관문부터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를 향하던 중 북경 문턱 팔달령에서 끝이 보이지 않은 거대한 벽이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벽의 이름은 ‘만리장성’이었다.
만리장성은 산등선을 따라 벽돌로 세워진 성벽이었다. 높이 7.8m, 폭 5.8m로 말 다섯 필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규모다. 장성은 적의 침임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300~500m 지점마다 2층의 마루형 전투대에 사격공과 110m 지점마다 돈대라 불리는 병사들의 쉼터 겸 파수대가 설치돼 있었다.
대원들은 대자연을 이겨낸 만리장성의 위용 앞에 현혹당했다. 장성 곳곳에 쌓인 눈과 짙은 안개가 어우러진 신비한 분위기를 내뿜어 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정용(전남매일) 장수가 “첫 눈을 여기서 보게 됐다”며 감상에 빠지자 백희준(광주일보) 장수는 “산신령이 된 거 같다”고 덧붙였다.
▶서태후의 정원 이화원
만리장성을 넘어 도착한 곳은 북경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16㎞떨어진 이화원이었다.
이화원은 면적이 290만㎡에 이르는 중국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다. 이화원 곳곳에 세워진 옛 건물들은 청조 시대 정취를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서태후의 흔적이 두드러졌다. 서태후는 청조 말 자신이 은거하기 위해 이화원을 무리하게 재건해 군비를 탕진, 청의 멸망을 재촉한 인물이다.
원정대는 박지성(KBS), 주미(광남일보), 백희준, 장아름 등 젊은 장수들을 투입해 서태후의 자취를 되짚었다. 이들은 서태후가 거닐던 728m의 ‘장랑’이라는 복도를 따라 낙수당, 불향각 등 이화원의 상징적인 건물을 정찰했다. 낙수당은서태후가 말년을 보낸 곳으로 일렬로 늘어선 화려한 유리 병풍이 눈길을 끌었다. 불향각은 서쪽으로는 샹산, 동쪽으로는 북경대가 내려다보이는 높이 41m, 8각 3층 탑이었다.
백희준 장수는 "과연 서태후는 대단한 내공을 지닌 여자였다"며 “이곳에서 하루만이라도 서태후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의 심장 자금성
자금성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대원들에게 모든 적을 섬멸하라는 명령은 도무지 무리였다. 이에 정재영 단장은 승부수를 띄웠다. 속전속결, 적장만 베고 직선 돌파하겠다는 책략이었다.
묘수는 통했다. 첫 관문인 천안문부터 오문, 태화전, 중화전, 건청문, 어화원을 1시간 30분 만에 차례로 격파해냈다.
대원들은 빠른 시간 돌파하면서도 자금성의 복구 과정들을 짚어내는 세심한 내공을 보였다. '당시 없을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바닥에 놓인 커다란 옥들은 어떻게 옮긴 것이냐'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내며 적들을 베어갔다.
결국, 원정단의 파상공세에 북경문파는 무릎을 꿇었다.
승리를 쟁취한 원정단은 미소만을 남긴 채 고국으로 유유히 발길을 돌렸다.
-한경국 무등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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